한시, 계절의 노래(294)
문밖[門外]
[宋] 여도화(黎道華) / 청청재 김영문 選譯評
미세먼지에 위안부 할머니도 마스크. 연합DB
대문 밖 누런 먼지
한 자 가량 깊은데
바보들은 죽어라고
다투며 부침하네
초가 처마 한 치 태양
그 누가 알리요
한적한 내게 하늘이 준
만금의 보물임을
門外黃塵尺許深, 癡兒抵死競浮沈. 誰知一寸茅簷日, 天付閑人値萬金.
미세먼지가 삼킨 한강 원효대교. 연합DB.
내가 2년여 전 이사온 곳은 대구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나이 50 후반에 시골로 이사간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내가 전원주택을 지어 금의환향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내가 지금 사는 곳은 15층 아파트다. 금의환향은 고사하고 오히려 내 고향에서 더 멀어진 감이 있다. 포의(布衣)를 입고 더 먼 타향으로 떠도는 신세라 해야 한다.
다행히도 아파트 뒤로 매화가 피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안개 피는 낙동강이 멀지 않아 다소나마 사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또 아침이면 낙동강 너머 동쪽 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시골 면 소재지의 고즈넉한 야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다.
실제 대도시와 떨어진 물리적 거리는 30분이지만 심정적 거리는 “이 풍진 세상 밖”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새벽이면 닭이 울고 낮이면 동네 개가 컹컹 짖는다. 아파트 바로 밖에 작은 기차 역이 있고 KTX 철길도 지나지만, 추운 겨울 날 창을 닫고 앉아 있으면 천애(天涯)의 적막강산이 따로 없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그래도 해는 떠오르고
이 시의 묘사처럼 누런 먼지가 한 자 넘어 쌓인 속세에서 부침하는 사람들이 덧없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더러 정좌(靜坐)에 들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을라치면 명리에 골몰하는 나 자신의 모습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더구나 오늘처럼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한 날에는 아침마다 하늘이 내게 보내주는 보물인 일출조차 볼 수 없다. 천지사방은 희뿌연 먼지로 뒤덮여 원근조차 구별이 안 된다. 이 풍진 세상은 30분 밖 대도시에만 있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곳이 모래바람 불고 누런 연무 뒤덮인 속세다. 휴대폰 벨 소리는 수시로 울리고 초고속 광케이블은 책상 앞까지 달려온다.
세상으로 들어감[入世]이 따로 없고 세상을 떠나옴(出世)이 따로 없다. 1600년 전에 도연명은 벌써 “사람 사는 경계 안에 오두막을 엮고(結廬在人境)” 한적한 삶을 향유했다지만, 나 같은 속인에겐 너무나 아득한 경지다.
다만 세상 밖과 세상 속을 구별할 수 없는 이 망망한 천지 간에 태양이 만물을 명징하게 비춰줄 수 있도록 희뿌연 미세먼지라도 깨끗이 걷히길 소망할 뿐이다. 내일이면 더 좋고 아니면 모래... 아니면 또 그 다음 날이라도...
*** 台植補
작자 여도화(黎道華)는 송대 황관도사(黃冠道士)라, 字를 사후(師侯)라 하고, 號는 이암(頤庵)이라. 지금의 강서성에 속하는 임천(臨川) 사람이다. 상부관(祥符觀)으로 출가해 도사가 되어서는 정심수련(靜心修煉)했다. 다만 탈속은거(脫俗隱遁)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했다.
그 어미는 여수(汝水) 동쪽에 살았는데 도화는 매일 그 앞을 지나면서 어머니께 문후 인사를 했으니 한서(寒暑)에도 한결같아, 봄 홍수를 만나서는 배를 얻어 저어 건너 찾기도 했으니, 그러다가 작은 배가 뒤집혀 동승한 사람들이 몰살한 가운데서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으니, 효성이 이와 같았다.
도사로서 그는 도가 책을 섭렵했지만 그에만 얽매이지 않아 유학서도 많이 봐서 박람강기했다. 일찍이 등명세한테 《춘추春秋》를 배우기도 했으며 사일(謝逸)한테서는 《시경詩經》을 공부했다.
시문에 뛰어나 지은 글이 자못 많아 이를 묶은 《이암시집頤庵詩集》이 있다. 증계리(曾季狸), 승혜엄(僧惠嚴)과 더불어 나란히 시로써 이름이 나니 당시 사람들이 이들은〝임천삼은(臨川三隱)〞이라 했다. 강지무(姜之茂)가 일찍이 그의 시편을 모아서 《임천지일시(臨川之逸詩)》를 내시 조정에서 그것을 입수해 비각(秘閣)에 보장(保藏)케 했다.
생몰년이 잡히지 않는다. 미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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