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詩 & 漢文&漢文法

백로, 거미, 아지랑이, 그리고 달팽이

by taeshik.kim 2019. 3. 9.
반응형

한시, 계절의 노래(295)


사물 관찰[觀物] 둘째 


[宋] 백옥섬(白玉蟾, 1194~1229) / 김영문 選譯評 


이집트 사하라 사막



새벽 백로 배 불리려

개울 지키고


저녁 거미 생계 위해

집을 빌리네


구속 없는 아지랑이

허공 달리고


가쁜 숨 없이 달팽이는

벽 위 밭가네


曉鷺守溪圖口腹, 暮蛛借屋計家生. 不羈野馬空中騁, 無喘蝸牛壁上耕.


사막의 신기루. 사하라 사막에서



시를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선 시인의 생애와 사상 등 작품 외적 요소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시를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 흔히 역사적·전통적 접근법으로 불리는 이 방법은 작품 밖의 다양한 상식에 치중하다 정작 시 내면의 구조나 풍경을 놓치기 쉽다. 이에 반발하여 구조주의나 신비평에서는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텍스트로서 독립성을 가진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들은 텍스트를 받치는 구조나 시어 등 시 내면의 미적 가치를 중시한다. 


그러나 이 두 입장 모두 텍스트를 읽는 주체로서의 독자의 생각이나 의식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므로 독자는 작가나 작품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한 것이 바로 수용미학을 대표로 하는 독자 중심의 텍스트 읽기다. 독자의 독립선언이다. 이의 입장에 서면 모든 문학 텍스트는 미완성이다. 


모든 텍스트는 독자와 교감하는 과정, 즉 텍스트 읽기 과정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같은 텍스트라도 독자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텍스트의 전체 문법이나 구조를 왜곡하지 않는 한 다양한 읽기가 가능해진다. 


구도? 덧없음? 환멸



이 시를 쓴 백옥섬은 남송의 유명한 도사(道士)이므로 이 시는 무위자연 속에 구현된 도교의 진리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생생불식하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맑고 평이한 시어 속에 담아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시의 아름다움과 무슨 상관이랴?  


새벽녘 개울 가에 서 있는 백로, 저녁 때 그물 집을 짓는 거미, 봄날 들판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천천히 담벼락을 넘어가는 달팽이를 담담하게 묘사한 내면의 구조를 일별해보면 이 시는 병치된 사물이 각각의 포지션을 지키며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드러내는 것이 미감의 핵심이다. 병치 구조가 무지개 같은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이다. 도교의 진리도 이런 구조를 통해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독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어떤 독자는 만물이 각각의 특성에 따라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측면을 중시할 것이고, 어떤 독자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만물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입장도 있을 수 있다. 「님의 침묵」의 ‘님’이 왜 꼭 진리나 조국으로 제한되겠는가? 그냥 남녀 간의 사랑하는 ‘님’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모든 방법에 기대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써나갈 뿐이다. 어떤 때는 시 밖의 환경이나 시인을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어떤 때는 시 내면의 구조를 세밀하게 따지기도 하고, 또 더러는 나 자신의 환경과 생각을 곧 바로 시 읽기에 투영하기도 한다. 다만 나 자신이 어떤 하나의 방법에만 얽매이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에게도 단일한 독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하나의 텍스트를 백만의 독자가 읽으면 최대한 백만의 텍스트로 재탄생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백만 사람의 얼굴이나 개성이 모두 다른 것처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