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한국사의 또 하나의 기둥,
민족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혹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양사와 달라서 오랫동안 한 군데 같이 모여 살며 공동운명체로 지낸지라
오래전부터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런 기반하에
고대부터 민족사로 역사를 보는데 익숙하다.
정말 그런가.
민족사라는 건 최소한의 이익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고 있을 때
그 집단을 우리가 민족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조선시대 호적을 보자.
전 인구 10프로 정도가 양반,
5-6프로 정도가 중인이며,
양반 아래에는 노비가 무려 전 인구 절반에 육박하고,
그 나머지가 평민인 사회구성을 하고 있었던 시절이
멀지도 않은 18세기 초반까지,
쉽게 말해 불과 20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라기보다 서로간에 이익을 공유하기는커녕
극소수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단순한 빈부차가 아니라
노예로 부리며 지배자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시대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민족이 없던 시절까지도 민족이라는 20세기 관점으로 이 시대를 투영하며
민족의 이익에 따라 당시 사람들의 삶을 재단하는데 익숙하다 하겠다.
자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드리겠다.
18세기 초반까지도 전 인구 절반을 차지하던 조선땅 노비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한국사에서 민족이란
바로 이러한 내부의 갈등이 최소한의 정도나마 해결되는 그 시점에 탄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우리 역사에서
민족사라는 것이 성립된 시점이 언제겠는가.
같은 땅에 같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모두 한민족이라는 난폭한 개념으로는
역사를 절대로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족사의 개념으로 지난 수쳔년을 재단하고 서술하는 현재의 "민족사관"은
폐기되어야 옳은 것 아니겠는가.
*** [편집자주] ***
동포同胞가 언제가 탄생하는가?
무엇보다 민족을 논하려면 소속감이 있어야 하는데 저 소속감이 없다.
조선시대에 붉은악마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이 민족의 탄생에서 구한말 외세와의 쟁투보다 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것이 실은 스포츠다.
대한민국 혹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은 조선을 기반으로 하기는 했겠지만, 실상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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