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12년 10월 28일, 로마 제국 패권을 둔 조폭 내전이 벌어졌으니, 이 전쟁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이끄는 군대가 막센티우스 대군을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에서 사생 결단을 벌여 일망타진한다.
이 승리로 콘스탄티누스는 사두정치체제라는 공동통치체제를 끝내고 1인 독재 시대를 화려하게 개막한다.
다만 이 기억이 싫어서였는지, 콘스탄티누스는 이후 로마가 싫다 해서 냅다 콘스탄니노플이라는 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고는 기어이 그쪽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렇게 해서 로마시대는 비잔틴시대로 넘어간다.
로마사 분수령을 이룬 저 양아치 쌈박질을 그것이 일어난 장소를 따서 밀비우스 다리 전투 Battle of the Milvian Bridge 라 하거니와,
저 다리를 라틴어나 그 후신 이탈리아가 저리 부를 리는 없을 테고,
당대 라틴 세계로 돌아가면 폰스 밀비우스 Pons Milvius 혹은 폰스 물비우스 Pons Mulvius 라 불렀거니와,
그에서 비롯하는 이탈리아에서는 폰테 밀비오 Ponte Milvio 혹은 폰테 몰레 Ponte Molle 라 하니,
이 친구는 물론 후대 잦은 보수를 해댔겠지만 지금도 남았으니 바로 아래라
이 지도를 보면서 유의할 점은 그 지점이라,
당시 로마 제국 수도 최중심으로 북서쪽으로 감돌아 흐르는 테베르 강을 가르지르는 로마 왕궁 중심으로 북서쪽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북쪽에서 치고 내려왔고, 또 누군가는 왕궁을 수호하려 막아서는 지점이라는 사실이다.
치고 내려온 쪽이 콘스탄티누스였고, 남쪽에서 올라가 수도 방위에 나선 쪽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센티우스 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 였다.
말하자면 막센티우스 기준으로는 콘스탄티누스가 반란군인 셈이다.
당시 양측이 동원한 군대는 각각 2만 혹은 2만5천 정도였다고 추산한다.
뭐 동네 양아치 조폭 나와바리 쌈박질이었다.
이 전투에서 참패한 막센티우스는 전사하고 그 머리가 잘렸다.
그 머리를 들고서 콘스탄티누스는 화려하게 로마로 입성하고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한다.
이를 기념하는 거대 기념물이 콜로세움 입구에 선 이른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다.
옥땅으로 따라와! 말죽거리 잔혹사 드라마 한 편 쓰고선 저리 거창한 기념물을 만들어놓았다.
***
애초 다른 이야기를 하려 했다가 길이 옆으로 새고 말다.
내친 김에 이 사건도 내 나름으로는 정리할 필요가 생겨 손을 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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