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히스툰 비문 Behistun Rock이 인류사, 특히 고대 근동사는 물론이고 쐐기문자 판독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점에서 그 중대성은 이집트 문자를 읽게 만든 로제타스톤에 비견한다.
그 발판을 마련한 이가 19세기 중반 헨리 롤린슨 Henry Rawlinson 경이라는 영국 동인도 회사 군인이었다.
그는 이 설형 문자를 판독 번역해 냈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야 뭐라 하겠냐마는 그 발판을 마련한 베히스툰 비문을 조사하고자 그가 저런 험준한 벼랑을 올라 그가 비문을 조사했다 해서 회화로 표현한 한 장면이다.
내가 볼 땐 저리 오를 수도 없고, 더구나 저 상태로 계속 조사한다?
밧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조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내 막연한 추측이다.
지극히 극화한 상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그 작업이 쉬웠을 수는 없다.
신의 장소를 의미하는 베히스툰 비문은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대왕이 세운 이란 지방 베히스툰 산 절벽에 다국어로 새긴 비문이자 커다란 바위 부조다.
비문에는 세 가지 다른 설형 문자 언어(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로 작성된 동일한 내용의 텍스트 세 가지 버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설형 문자 문자를 해독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Sir Henry Creswicke Rawlinson, 제1대 자작 1st Baronet (1810~1895)은 영국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 소속 육군 장교이자, 정치가이며, 동양학자Orientalist였으며 때로는 아시리아학 아버지 Father of Assyriology 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의 아들 헨리Henry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고위 사령관을 지냈다.
저 베히스툰 비문은 아래 글을 참조하라
비스툰 비문, 다리우스가 선포한 권력의지
[동부 터키 여행] (5) 반Van에 새긴 크세르크세스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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