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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박물관의 언어

by 느린 산책자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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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은 편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건’을 대상으로 하지만, 실은 박물관은 글로 가득 찬 공간이다.

패널부터 네임텍, 도록에 이르기까지 박물관은 여러 방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 ‘물건’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려 한다.

요새는 이 방법이라는 것이 영상이나 디지털 기기로도 확장되고는 있지만, 글에 의한 설명은 박물관이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사용된다.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가를 떠나, 만드는 시간이나 예산의 측면을 고려한다면 글이라는 것은 박물관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사용될 것이다.

제작의 수월성을 말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박물관의 글을 쓰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읽기 쉽게 쓰는 것이 어렵다라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박물관이 갖는 힘,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박물관의 글이 갖는 힘에 대한 것이다.

힘이라는 것은 일종의 권위와 같아서, ‘무게감’을 갖게 된다.

박물관의 글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 느끼게 된 것은 부끄럽지만 최근의 일이다.

어린이박물관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 교사들과 회의를 하던 때였다.

어떻게 하면 초등학생들을 어린이박물관으로 유입시킬 수 있을까, 교사들에게는 박물관이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을까 등등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했다.

그 와중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내 마음에 꽂혔다.

“우리는 역사 전공은 아니잖아요.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도 다녀보고 싶지만, 저곳에 가서 내가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때 그 설명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요. 만약 박물관에서 이곳에서는 이런 것을 말해줄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정리해 준다면, 그런 부담감은 줄어들 것 같아요. 박물관에서 말하는 것은 틀리지 않는 것이잖아요.”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나는 내 전공이 아닌 주제로 전시를 할 때마다 혹시라도 나의 글이 틀릴까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실제로 가끔은 틀린 부분이 있어서 정오표를 만든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박물관이라는 기관에 보내는 신뢰. 그것이 갑자기 내게 무겁게 다가왔다.

이 무게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이 회의가 있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다.

모 기관에서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에듀케이터들을 초청한 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였다.

헤드 에듀케이터가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조직 체계를 설명했다.


“우리는 해석팀이 있습니다. 박물관이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주기 위한 팀이죠. 예를 들어 ○○나라의 어떤 민족에 대해 서술할 때, 소수민족이라는 표현보다는 ○○ 문화권에서는 다수의 민족 같은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학예사 개개인의 단어가 아니라, 박물관이 통일된 단어를 써서 박물관의 글들이 비슷한 결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초보 학예사 시절이 생각났다.

박물관의 글이 갖는 힘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없었던 나는, 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극히 드물었다.

내가 배운 당시 교과서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중학교 2학년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라는 것 정도였다.

한동안은 ‘전시 주제에 대한 책이나 논문을 쉽게 잘 요약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박물관에서 써야 하는 글이라 생각했다.

나의 주관은 들어가지 않은 철저한 객관적인 글. 그것이 나의 지향점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기계적으로 쓴 글이기도 했고,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은 글이었다.

박물관의 글이 힘을 갖고 있다면, 박물관은 좀 더 세심하게 박물관이 쓰는 단어를 골라야 한다.

우리의 대화 상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톤을 유지하며 우리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본다는 것은 박물관의 이야기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을 존중하는 단어들이 모여 글을 이루고, 이 글들이 박물관의 언어로 이루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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