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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박물관의 소리: 박물관에서 시끄러울 수 있는 권리

by 느린 산책자 202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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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박물관 조성을 시작하면서 관장님은 이런 비전을 던지셨다.

‘뛰어노는 박물관’.

다소 혼란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

내부에서는 ‘다른 멋진 비전도 많을 텐데, 아니 그것보다도 박물관에서 뛰는 것이 맞나?’ 같은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이라는 곳은 ‘뛴다’라는 단어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하나 덧붙여 ‘시끄럽다’라는 단어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박물관 안만 들여다보아도 몸으로 체감한다.

박물관 넓은 공간에는 유물이 유리장 안에 모셔져 있다.

유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 유물에는 가까이 갈 수 없도록 펜스가 쳐져 있다.

어떨 때는 너무 적막해서 또각또각하는 구두 소리마저도 시끄러울 때가 있다.

여기서는 ‘유물’, 그리고 ‘유물을 감상하는 사람들’만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박물관 곳곳의 말들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물관 안에는 ‘부정어’가 넘쳐난다. 이를테면 ‘○○을 하시면 안 됩니다’ 같은 말이다.

‘플레시를 켜시면 안 됩니다’ ‘큰 소리를 내시면 안 됩니다’, ‘뛰지 마세요’ 등등.

이 부정어들은 박물관의 매너로 분류된다.

당연히 이 조용함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조용한 공기 속에서 사색하기를 즐겨하는 취향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일부분은 이들이라 할 만하다.

다만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나는 점점 궁금해졌다.

시끄럽게도, 뛰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은 박물관이라는 곳은 어린이와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 생각하게 하는 것 아닐까.

박물관은 어린이에게 가혹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뛰어노는 박물관’이 어린이박물관의 캐치프레이즈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린이 친화적인 말로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어린이들이 박물관 경험을 긍정적인 것으로 느끼게 하려면, 부정어보다 긍정어로 박물관의 공간이 가득 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저 ‘뛰어노는 박물관’이 정말로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소심한 나는 전체를 바꿀 수 없었다. 다만 내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는 이 규칙을 바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프로그램 중, 야간에 교육을 신청한 가족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있었다.

교육 강사님과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나는 강사님께 이런 부탁을 드렸다.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강사님 눈이 잠시 흔들렸던 것 같다. 이 학예사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뛰지 말라고 말해주세요’가 아니라 ‘뛰지 말라고 말하지 마세요’는 처음 들으셨을 것이다.

뒤이어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다만 너무 심하게 뛰어다니면 유리장에 부딪힐 수 있으니, 그 부분만 조심해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전시실에서 뛰어도 시끄럽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박물관에 대한 기억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슬프게도 이 프로그램은 박물관을 떠나기 전에 개편을 끝내지 못해서, 실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유물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뛰어다니는 박물관’이 실현되었으면 한다.

나는 박물관의 적막함이 싫다. 나는 사람들이 전시를 보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소리가 가득 찼으면 좋겠다.

어린이들의 즐거운 목소리도 전시실을 채웠으면 좋겠다.

누구와 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유튜브를 튼다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물관 소리에 대한 기준을 조금 낮추어 주었으면 한다.

박물관의 허용 데시벨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기준을 약간은 높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박물관의 곳곳이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긍정적인 단어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재미있는 유물을 찾아서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해도 좋아요’라든지 ‘옆 사람과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요’는 어떨까.

하나 덧붙여서 어린이박물관 헌장이라는 것을 만든다면, 박물관에서 시끄러울 권리, 박물관에서 뛸 수 있는 권리를 제1조로 넣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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