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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박물관의 접근성과 포용성은 보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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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박물관계 새로운 흐름, 아니 새롭다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부쩍 중요성이 대두하는 문제가 바로 저 두 가지

곧 inclusivity와 accessibility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박물관은 저와 같은 포용성과 접근성에 대한 보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당위가 그것이라

누가 저와 같은 말에 의의를 달 수 있겠는가?

박물관이 특수한 사람만을 위한 기회균등 행복추구가 아니라 그런 차별을 없애야 하며,

이를 통해 박물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박물관은 특정한 계층만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어야 한다는 데 누가 그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하겠는가?

문제는 그 방향성이다.

이 방향성이 곧 내가 보는 박물관 철학인데, 유감스럽게도 그 구체하는 방향으로 들어가면 아주 멀어서 지나친 특수주의에 매몰해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예서 말하는 특수주의란 무엇인가?

그 대상은 물론 아닐 때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저 문제의식은 언제나 소수자 혹은 장애인을 겨냥한다. 

물론 여타 다른 사회 부문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이 저들 소수자 혹은 장애인 같은 특정하게 분류할 만한 사람들,

예컨대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에 견주어 현격히 그 기회가 박탈된 사람들한테도 열려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누가 의의를 달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 보기엔 저런 특수주의에 바탕한 접근 역시 그 자체 차별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 자체가 벌써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서 출발하는 까닭이다. 

내가 생각하는 포용성과 접근성은 저와 같은 특수한 계층 혹은 그렇게 분류할 만한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더욱 광범위한 인권 차원을 말한다. 

인권 혹은 정의라는 가치가 어찌 성소수자나 장애인한테만 적용될 수 있겠는가?

내가 보는 이런 가치는 누구한테나 다 해당한다. 

장애인이어서, 성소수자여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그 출발이 말할 것도 없이 보편주의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 누구나 인간답게 누릴 권리 아니겠는가?

어찌 그것이 비단 저와 같은 사람들한테만 그치는 문제이겠는가?

저와 같은 특수주의적 접근은 그에서 벗어나는 사람들한테 가해지는 무수한 차별을 자칫 합리화한다. 

박물관이 포용해야 하고, 접근가능해야 하는 것들은 특수성을 초월하며, 또 초월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저와 같은 특수주의적 접근과 보편주의적 접근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나아가 그런 까닭에 어디에 뿌리를 박느냐에 따라 박물관 자체가 지향해야 하는 흐름 자체도 바뀐다고 본다. 

더 간단히 말하자.

박물관이 열리고 포용해야 하는 대상이 소수자 그룹인가 아니면 불특정 전부인가?

당연히 후자가 되어야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보편주의에 입각하면 저 가치, 곧 포용성과 접근성을 달성하기 위해 박물관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그만하고 구체로 예를 들겠다. 

예컨대 박물관이 보유한 유물에 대한 접근성이 있다.

이거 단 한 군데도 제대로 DB 구축된 데 없다.

물론 국립박물관 같은 데서는 기초 자료는 있지만, 도대체 저들이 무엇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유물들 기본 사항은 어떤지 현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저들이 제공하는 유물 DB 자료라는 것들 보면 일부 명품 위주라 간주하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국가가 무슨 유물을 갖고 있으며, 그런 해당 유물들 정보는 어떤지 공개되어야 할 게 아닌가?

이 보편주의는 국경이라는 관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발생하는데 국경 안과 국경 밖의 일치를 꾀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지금 박물관이 말하는 접근성 포용성은 모조리 국경 안 내셔널리즘이다. 

하지만 그것을 소비하고 누려야 할 대상은 국적인만이 아니다. 세계시민이다. 

그렇다면 세계시민을 위해, 그네들 포용성과 접근성을 높이고자 우리 박물관은 무엇을 어찌 하고 있는가?

다시 DB 예를 들자.

세계시민을 포용하고, 그들의 접근성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 DB는 영어를 비롯한 주요 외국어 서비스가 되어야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한국박물관 사정은 어떤가?

미안하지만 깡통 수준이다. 

세계를 위한 접근성 포용성은 제로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길어져 결론한다.

박물관의 포용성과 접근성은 그 어떤 경우에도 보편주의 관점에서 입각해야 하며, 그 보편주의는 내셔널리즘이 아닌 코스포폴리타니즘이어야 한다. 

내가 말한 이 요지는 실은 접때 국립항공박물관 주최 학술대회에서 코멘트하고자 했지만, 귀찮아서 넘겨버렸기에 다시금 생각나서 적어둔다.

이집트 박물관들과 연계한 저 심포지엄에서 나는 이집트 사람들한테다가 그 접근성 포용성이라는 가치를 세계를 향해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싶었다.

왜?

이집트를 소비하는 계층은 세계시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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