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대는 7.17은 8.15 광복절과 더불어 국경일이며, 노는 날이다.
물론 그 혜택을 누리기 시작한 때는 얼마 되지 않아서 그날이라 해서 엄마 아부지 농사일에 강제사역을 면제받을 수는 없었으며
그날이라 해서 쇠죽 끊이는 일을 건너뛸 수도 없었고, 삽질을 안할 수도 없었으며
또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3년 내내 그날이라 해서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강제 등교가 없었던 때가 없었고
기자 되어서도 공휴일이라 해서 저날을 제대로 쉬어보기 시작하기는 몇 해나 될까 하니
솔까 그날이 국경일이건 아니건 실상을 따져보면 그렇다 해서 다른 것도 하등은 없다.
그렇지만 묘미는 좀 그러해서 저 날이 달력에 빨간색으로 찍힌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검정색 날짜는 천양지차가 나기도 했으니
하긴 백수를 선언한 지금은 매일매일이 국경일이니
그러고 보면 참말로 여가 여유라는 것과 담을 쌓은 불행한 세대가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오늘이 제헌절이라고 왜 오늘이 국경일이었다가 아니게 되었는지는 이곳저곳 보도가 보이거니와
많은 지적이 있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 전개 과정을 기억하듯이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의욕으로 주 40시간, 주 5일제를 근간으로 삼는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그에 반발한 이른바 산업계 경제계가 반발하며 생산성 저하와 인건비 부담 가중을 우려하자 그것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2006년에는 식목일이 희생되고, 2008년에는 제헌절이 장렬히 산화했다.
제헌절은 1950년부터 57년간 법정 공휴일이었다지만, 내 엄마 아부지는 공휴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 분들이다.
생산성 저하? 인건비 부담 가중?
그렇게 해서 없앤 혜택은 다시 고스란히 산업계 경제계로 돌아갔다. 이거 웃기지 않는가?
놀자판도 산업 경제니깐 그 단물은 산업계 경제계가 아주 쪽쪽 빨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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