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에서 그 깜찍 공주 오드리 햅번이 미국 기뤠기 그레고리 펙을 만나 수작을 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된 삐아짜 스파냐는 그 기분과 폼을 내려는 사람으로 언제나 북적이는 overtourism의 총본산이 되었거니와,
분수대를 앞세우고 계단이 시작하는 오른편 바로 귀퉁이에 Keats-Shelly House란 작은 기념관 하나가 있어
이곳이 바로 영국 낭만파 문학의 기린아, 아이돌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와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둘 다 요절했으며, 삼두마차 중 개중 나이가 많은 조지 고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역시 한창 때 느닷없이 갔다.
빨리 핀 꽃은 빨리 시드는 법이다.
디스트릭트 호수 한켠 오두막에서 월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가 평생 비서 혹은 시다로 써먹을 요량으로 여동생 도로시를 시집도 보내지 아니하고 데리고 살면서,
반항아 새무얼 테일러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를 만나 의기 투합해 1795년 <리리컬 발라즈Lyrical Ballads>라는 작은 시집을 내면서 영국문학은 낭만파 기치를 올린다.
그 직전 선배 월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만 해도 다소 음울함을 풍겼으나 저 두 사람이 등장하고 소설에서는 월터 스콧(Walter Scott.1771~1832)이 중세문학 부활을 부르짖으며 <아이반호>를 불러내며 스코틀랜드 내셔널리즘을 부르짖으면서 이젠 로만티시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된다.
저 시집엔 장대한 워즈워쓰 서문이 붙었거니와(그 서문은 초판엔 없고 실은 재판에 있다.) 이것이 바로 영국 낭만파 문학 등장을 알린 위대한 권리장전이다. 그에서 선언하기를 시[poetry]란
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라 했다.
가슴 터지는 감동..북받치는 열정 이것이 저들의 비수였다.
이로써 문학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물론 극성은 패가망신의 지름이라 이 흐름 역시 발자크라는 또 다른 거인을 만나 좌초하고 만다.
리얼리즘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새로운 흐름과 인류 역사상 가장 괴기스러움을 자랑하는 보들레르에 치명상을 당하고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니
미라가 된 그들을 다시 불러낸 것이 바로 20세기 이래 극성을 구가하는 대중문화다.
마이클 잭슨은 20세기에 부활한 워즈워스로 나는 본다.
같은 낭만파라 해도 워즈워스와 코울리지 역시 구태로 몰린 데다 특히 전자는 월계관까지 쓰는 바람에 권력을 얻는 대신 시정詩情은 급격히 잃으니 그 빈자리를 메운 아이돌 그룹이 바이런 셸리 키츠, 쓰리 보이즈다.
저들은 저 순서가 곧 나이 순서라, 나이팅게일이며 목동이며 종달새 노래한 시인들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나 25세에 요절한 천재 키츠도 그리 단순화할 수는 없다.
저들 중에도 가장 어린 키츠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돌림병인지 뭔지 회복 불능에 처하자 요양하러, 혹은 죽음을 맞으러 이태리로 갔던 것이다.
나폴리로 입항하려 했다가 검역에만 물경 일주일이 걸렸고, 겨우 통과해 이곳 스파냐광장 한 켠에 집을 얻었다가 결국 이 집 저 침대서 최후를 맞고만다.
그가 죽자 교황청은 집인지 가재도구들을 불태워버리라 한다. 어찌됐건 그것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오늘에 전한다.
이들에 얽힌 로마의 사연들을 근자에 접하고는 기간 그런 상처들을 놓쳤다가 어제 불현듯 한때는 영문학도를 꿈꾼 늙다리 기자가 각중에 현장 확인차 저들의 무덤과 집과 죽은 침대를 둘러보곤 만감이 교차하여 몇마디 초하노라.
몇년 전, 직장 생활 만년을 기약하는 학과 동창 두어명(우리는 그들을 공수호 이영배라 부른다)이서 퇴직하거나 해고 당하면 미련없이 장기 영문학 기행을 하자는 도원결의를 했다.
근자 그 출발지로 어디를 삼을 것인지 잠시 논란이 있어 태국에서 해야 한단 놈도 있고(이유는 모른다. 아마 율 브린너 주연 영화 때문이 아닌가 한다), 키플링과 A PASSAGE TO INDIA에 착목해 인도로 하잔 놈도 있으니,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예이츠를 만날 더블린에서 마무리할 이 여행에서 로마 역시 뺄 수는 없으리라.
정우성보다 잘 생긴 바이런은 아마 소아마비였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암튼 다리가 매우 불편했고 그것이 200년 전 정우성에겐 콤플렉스였다.
낭만파 본령은 고대 그리스 로마라 그리스 독립전쟁 발발하자 참전한 그는 헤엄을 쳐서 그리스 섬을 들락거렸다는데 지금 언뜻 생각나지 않는 그 섬도 보리라.
그러고 보니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이 중에 그 남상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는 블레이크와 워즈워스가 천수를 누렸고, 코울리지 역시 그런 삶을 비스무리하게 살았지만, 그 최전성기 시인들은 모조리 병이나 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바이런은 36세에 말라리아로 갔고, 셸리는 나폴리 앞바다서 요트 타다가 물에 빠져 하직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이들이다.
로마 구심 피라미데 무덤 있는 그 인근에 조성한 공동묘지에 묻힌 키츠 묘비명은 이렇다.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물에 쓴, 혹은 물로 쓴 이름은 금방 지워지기 마련이니, 아마도 그가 이 구절을 사용한 의미는 이 세상에 잠깐 살다간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을지 모른다. (2018. 7. 14)
***
과거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뭔가 걸신 걸려서 썼단 느낌을 주는 일이 있다.
6년 전 오늘 쓴 저 글이 그렇다.
깊이 생각해서 쓴 글은 저리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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