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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발명한 김정희와 박제가

by 한량 taeshik.kim 2020. 9. 4.

 

 

 

 



《용재수필》 물린 자리 허전함을 메꾸고자 새벽에 뒷다리 잡기 시작한 후지즈카 책 역본이다. 원저 명성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거나와 우리가 아는 추사 김정희는 '발명'되었다.

다시 말해 추사는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요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주물한 이미지다. 그 위대한 주물의 용범을 만든 이가 후지즈카요 그가 주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후지즈카를 제대로 소화한 적이 없다. 저 일본어 원전은 무단 복제본으로 오래전에 구해 놓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지즈카가 더욱 놀라운 점은 박제가 역시 저의 손끝에서 관속에서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인 후지즈카에게 김정희나 박제가가 종착역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바는 청대 고증학의 일본 열도 상륙의 양상이었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 김정희와 박제가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점만을 빌미로 저의 성과를 결코 깎아내릴수는 없다.

후지즈카는 분명 위대한 역사가다. 한데 책이..970쪽이다..

(2016. 8. 29) 

 

***


 

 

 

 

이 후지즈카 책...얼마전에 읽기 시작했는데 난 이 사람 그저그런 연구자로만 알았다가 지금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문체가 무미건조할 줄로만 알았다. 한데 문체는 유려하기 짝이 없고,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고자 동원하는 자료가 광범위하기 짝이 없다. 


이 후지즈까는 생몰년을 보면 1879~1948이니 이른바 근대를 살다간 지식인이다.

내가 일찍이 이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이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동시다발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 무렵 활약한 연구자들은 실은 문필가라, 연구서라면? 혹은 논문이라면 떠올리게 되는 그런 전형의 글쓰기와는 전연 달라 입안에 착착 문체가 감긴다. 


이 시대가 지나서 한중일 모두 글쓰기가 개판으로 돌변한다. 이른바 연구업적 논문 집적의 시대가 되어 아무도 그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돌입한다. 《장안의 봄》이 성공한 까닭은 무엇보다 문체에 기인한다. 


논문이 학문을 숙성케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죽인다. 논문은 퇴출해야 한다.

그걸 존속하려거든 그 문체를 바꿔야 한다.

 

(2016. 9. 4)

 

***

저에서 말한 후지즈카란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를 말한다. 그와 관련해 그간 우리 언론에서 다룬 행적들을 우리 공장 보도 기준으로 적출 정리한다.

 

2006.02.02 10:50:14
추사 관련자료 2천700여점 한국에 기증
김정희 친필 20여 점 포함, 日 추사 연구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시서화에 두루 이름이 높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사거 150주년을 즈음해 그의 친필 20여 점을 포함한  추사  관련 자료 2천700여 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기증됐다.

 

이들 자료는 식민지 시대에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평생 수집한 자료 중 그 집안에 소장돼 온 자료 일체로서, 그의 아들인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가 경기 과천시에 최근 기증한 것이다.

 

과천시는 2일 오전 시청 청사에서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기증품의 대략적인 내역과 그 가치 등을 설명했다.

 

정밀 분석이 진행 중인 이번 기증품 중에는 특히 추사 친필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는가 하면 추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간찰(편지)이나 서책류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

 

추사 친필 자료로는 제주도와 북청 유배 생활을 끝내고 만년에  과천에  정착한 추사가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낸 간찰 '우선에게'(寄藕船)를  비롯해, 40대 초반인 1827-1828년에 두 동생에게 보낸 간찰첩(13통)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제자 이상적에게 보낸 간찰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 실물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되며, 간찰첩은 40대 초반 추사의  가족사를 연구하는 데도 요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아가 이 간찰첩은 이른바 추사체가 확립되기 전 추사 글씨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예사적인 연구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과천시는 이들 자료 외의 다른 추사 친필 실물은 추후 상세한 고증과 조사를 거쳐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기증품에는 이 외에도 추사와 청대 학자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수행한  제자 이상적, 추사의 아우로서 청대 학계와 교류가 깊었던 동생 산천(山泉) 김명희(金命喜), 그리고 추사가 스승으로 모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와 영재  유득공(柳得恭) 등이 청대 학자들에게서 받은 글과 그림 등 서화류가 60-70점이 확인됐다.

 

또 청대 학술, 특히 경학에 관한 주요 자료로 평가되는 '황청경해'(전 680책)를 필두로 하는 고서적 2천500여 책이 기증품에 포함됐다. 

 

이러한 자료들은 추사를 비롯한 조선후기 지식인 사회가 어떻게 청대 학술.문화계와 교류했는지를 밝히는데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기증품은 원래 수집가인 후지즈카 치카시가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고미술 거리)과 한국의 인사동 등지를 돌며 구입했던 것들로 그 중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는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 서예가이자 추사 연구가인 소전  손재형(孫在馨)이 후지즈카를 설득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끝)

 

 

2006.02.02 10:51:15
<추사 관련 주요 기증자료 목록>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다음은 일본으로부터 기증받은 추사 김정희  관련 주요 자료 목록.

 

◇ 서화

▲ 추사 김정희 친필 자료 

-우선에게(寄藕船)
과천시절,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낸 간찰. 추사의  글씨  중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 가운데 이상적에게 보낸 간찰은 매우 드물다.


-두 아우에게(寄兩弟帖)

1827년에서 1828년까지 40대 초반에 두 동생(김명희, 김상희)에게 보낸  간찰첩으로 모두 13건다. 제주도 이전의 글씨로 기명(記名)이 있는 중요자료.  40대  초반 추사의 가족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추사체가 확립되기 전 추사 글씨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청대(淸代) 학자의 자료

-청대학자서간첩(淸代學者書簡帖)
청대의 학자들이 조선의 김명희와 이상적에게 보낸 간찰들은 묶은 서간첩. 청대학자와 조선학자의 교류상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자료. 추사와 관련한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글을 보낸 청대의 학자는 장목(張穆), 이장욱(李璋煜), 주당(周棠) 등으로 조선 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다.

 

-오숭량서축(吳崇梁書軸)
일면식도 없이 주로 서신을 통해 추사와 많은 교류가 있었던 옹방강의 제자  오숭량(吳崇梁)이 추사의 동생 산천(山泉) 김명희(金命喜)에게 자작시 '매화(梅花)'를 작품형식으로 써준 것.

 

-왕희손서첩(汪喜孫書帖)
청대의 학자 왕희손(汪喜孫)이 추사에게 보낸 장문의 간찰. 
1839년, 추사 53세에 받은 이 간찰은 강절학단(江浙學壇:장쑤성과 저장성 학계)의 명사들을 소개하고 산천과 추사에게 글씨를 요망한다는 내용 등 조선과 청의  교류관련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돼있다.

 

-국화도(菊花圖)
1829년, 추사 43세 때 청의 화가 유식(劉栻)이 추사에게 그려준  그림. 청대예술계의 추사에 대한 인식의 정황을 엿보게 해 준다.

 

▲ 이상적서축(李尙迪書軸)
이상적이 송(宋)의 문인 신기질(辛棄疾)의 사(詞) '축영대근(祝英臺近)'을 작품 형식으로 쓴 것. 이상적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수작. 

 

▲ 증추사동귀시도임모(贈秋史東歸詩圖臨摹)
원래 증추사동귀시도(贈秋史東歸詩圖)는 동지사(冬至使)의 일행으로 청에 갔던(1809년 10월) 추사가 귀국할 때(1810년 2월) 청의 학자들이 전별연을  개최하고 그 내용을 그곳의 화가 주학년(朱鶴年)이 그린 전별도와 역시 그곳의 학자인 이임송(李林松)의 전별시, 추사의 난초그림 등이 한 폭으로 이루어진 것. 이 임모본은 한국인 최초 추사 연구가라고 할 수 있는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이 그대로  따라 그린 것이다.

 

▲ 청대서화(淸代書畵)
10여 폭에 달하는 청대 학자와 화가들의 글씨와 그림. 낱장의 선면(扇面)과  일부 첩으로 이뤄졌다.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곳 학자들에게서 받은 것을 중심으로 이상적, 오경석(吳慶錫) 등에게  보낸  것도 일부 포함됐다. 

 

◇서적
▲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1책. 옹방강(翁方綱) 친필본. 
조선의 학자들로부터 전해 받은 금석문에 대한 내용과 그 과정 등을 필기형식으로 기술. 매 1건마다 전해준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그들의 견해도 함께 수록했다. 추사 이외에 약헌(約軒) 홍현주(洪顯周), 자하(紫霞) 신위(申緯) 등이 보인다. 금석문의 내용과 관련 추사의 견해를 별도로 기록한 곳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옹방강과 추사의 교류관계가 매우 긴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해동금석존고(海東金石存攷) 1권 1책. 조인영(趙寅永) 친필본.
조인영의 친필 고본(孤本)으로 청의 연정(燕庭) 유희해(劉喜海)에게 기증한 책. '신라진흥왕비탁본잔자(新羅眞興王碑拓本殘字)'에서부터  '태고사원증국사비(太古寺圓證國師碑)'에 이르기까지 모두 97건의 조선고비탁본목록을 조인영의 자필로  기록했다.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4권 4책. 유희해(劉喜海) 저.
추사(秋史)와 아우 김명희,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 등 조선의 학자들이  전해 준 조선의 금석문을 청의 학자 유희해(劉喜海)가 엮어 만든 책. 조선과 청의  금석문교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자료다.

 

▲ 한간(汗簡) 필사본.
1829년 섭지선(葉志詵)이 추사에게 기증한 자료. 내용은 중국의 고문자(古文字)를 정리한 것이다.

 

▲ 황청경해(皇淸經解) 680책
추사의 스승이자 청대의 대표적 경학가(經學家)인 완원(阮元)이 저술한 학술 총서다. 뒤에 보완 편집된 왕선겸(王先謙)의 속편과 함께 청대 고증학의 정수를  수록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실학의 태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기타자료
▲ 사진
후지즈카 치카시가 청과 조선의 문화교류에 대해 연구할 때 수집한 자료 중 주요 자료를 촬영해 남긴 것들이다. 당시 사용했던 유리원판 등이 포함됐으며  추사의 작품은 물론 매우 많은 관련 자료가 있다. 이미 상당수 유실된 문건들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다.

 

▲ 후지즈카 치카시 친필 및 기타
후지즈카 치카시의 친필 서예작품과 그의 원고 및 주변 학자들과 주고받은 자료도 포함됐다. 후지즈카 치카시의 학문연구 및 활동 정황과 추사 연구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다. (끝)

 

 

 

2006.02.02 15:12:55
<추사 연구에 평생 바친 日동양철학자>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청조학 연구의 제1인자는 김정희다."


추사 김정희 연구의 메카를 자처하고 나선 과천시는 최근 한 일본인으로부터 큰 선물 보따리를 받았다.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고증학ㆍ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의 친필 서한 등을 무더기로 기증받았기 때문이다.

 

자료는 도서 2천500여 책, 서화류 46점 등 총 2천700여 건에 달하는  분량으로 식민지 시대에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평생 모은 것. 이들 자료를 그의 아들인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가 경기 과천시에 최근 전격 기증했다.

 

이번 기증품은 원래 수집가인 후지즈카 치카시가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고미술 거리)과 한국의 인사동 등지를 돌며 구입했던 것들이다.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국보180호) 역시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 서예가이자 추사 연구가인 소전 손재형(孫在馨)이 후지즈카를 설득해 직접 찾아온 것.

 

흔히 추사체를 완성한 서예가의 이미지가 강한 추사 김정희는 사실 당대 청나라에서 유행한 고증학의 대가이기도 하다.

 

추사가 금석학이나 예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청대의 학술, 특히  경학에  정통한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이 바로 후지즈카 치카시다. 

 

그는 '논어총설' 등과 같은 저서를 남긴 당대 일본의 대표적 동양철학자이며 특히 청대 경학과 고증학에 정통했다. 이 점이 바로 그의 관심 분야가 추사 김정희와 정확히 만나는 지점이다.

 

1926년 경성제대 중국철학 교수로 임명된 이후 후지즈카는 인사동 고서점가를 뒤지며 고증학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며 자연스레 김정희의 학문세계에 빠져들어간다.

 

1932년 10월 서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완당 김정희 선생 유묵ㆍ유품 전람회'라는 추사 사후 최초의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는데, 당시 후지즈카는 자신이 수집한 16점의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이후 1936년 나온 그의 도쿄제국대학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조선조에서 청조문화의 이입과 김완당'. 본래 근대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청나라 경학을 연구하며 학문활동을 시작했지만 후지즈카는 결국 추사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추사를 "청조학 연구의 제1인자"로 평가한 후지즈카는 지금까지도 추사  연구의 1인자로 꼽히며, 아직까지 한국의 추사 연구는 후지즈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와 관련, 김영복 추사연구회 연구위원은 "추사를 현대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학자가 치카시"라면서 "그의 추사연구는 후에 간송 전형필을 거쳐 완당평전의 저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를 기증한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는 "이들 자료가 앞으로 추사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어 한일 간의 학술ㆍ문화교류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과천문화원측은 밝혔다.

 

또한 그가 추사 관련 자료의 기증과 더불어 추사 연구에 써달라며 200만엔(약 2천만원 상당)을 쾌척했다고 과천문화원측은 덧붙였다. (끝)

 

 

 

2006.02.02 16:09:46
<한국에 기증된 세계 유일본 옹방강의 책>
친필 필사본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본에서 최근 한국 과천시에 기증된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 2천700여 건 중에는 추사 친필 간찰 20건 가량 외에도 매우  이채로운 가치를 지닌 자료가 포함돼 있다.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가 바로 그것이다. 

 

한권으로 된 이 '해동금석영기'는 우선 조선 혹은 한반도를 지칭하는 '해동'(海東)이라는 말이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선 금석문에 대해 빠진 기록을 정리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중국  베이징의 유명한 고서점 거리인 유리창, 혹은 한국에서 입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저자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이다.

 

옹방강은 자(字)를 정삼(正三)이라 하고, 충서(忠敍)라고도 했다. 호(號)는  담계(覃溪)라 하다가 만년에는 소재(蘇齋)라는 다른 호를 쓰기도 했다. 지금의 베이징인 순천(順天) 대흥(大興) 태생인 그는 건륭(乾隆) 17년(1752)에 과거에 합격해  진사(進士)가 된 이후 서적 편찬이라든가, 교육 전문관료로 활동했다.

 

옹방강은 그 당시까지 모든 문헌을 망라하다시피 한 지식 총서인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는 고증학(考證學)이 일세를 풍미하던 시대였다. 이런 추세에 그는 금석학(金石學)으로 부응했다. 옹방강의 이런 연구성과는 '양한금석기(兩漢金石記)'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전문 연구서적으로 빛을 보았다.

 

이때문에 그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청대(淸代) 제1의 금석학자로 꼽힌다.

 

한데 뜻밖에도 그의 친필로 된 '해동금석영기'가 이번 기증본 뭉치에서  발견된 것이다. 

 

옹방강이 직접 붓으로 쓴 원고 뭉치이기 때문에 자연 이 자료는 "세계 유일본일 수 밖에 없다"고 추사연구회 김영복 위원은 지적하고 있다.

 

이 자료는 중국에서도 끝내 활자화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문집 중 어디에도 이 자료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같은 추사연구회 김규선 위원은 덧붙였다.

 

따라서 이 '해동금석영기'는 옹방강 저술로 이번에 새롭게 존재가 드러난  자료가 되는 셈이다.

 

이 '해동금석영기'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조선 금석문에 대한 옹방강의 전문  연구 성과물이다. 

 

조선 사람도 아닌 청나라 사람이 왜 조선 금석문에 집착했느냐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청대 고증학 열풍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우문(愚問)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궁금함을 푼다는 자세로 돌진한 학문 풍조가 고증학이었으며, 그 대상 목록에서 조선 금석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청대 학자 유희해(劉喜海)가 편찬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전  4권4책)'은 지금도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제1의 참고문헌이 된다는 사실에서도 청대 고증학의 조선 금석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옹방강은 과연 어떤  통로를  통해 조선의 금석문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을까? 같은 관심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금석문 연구에서는 탁본 입수가 필수적이다. 옹방강이 직접 조선 금석문의 탁본을 제작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었으니, 이와 관련되는 정보를 옹방강은 대체로  조선의 지인들을 통해서 입수하고 연구했으며, 나아가 그런 연구성과를 조선 지식인들과 공유했던 것이다.

 

다행히 이번 '해동금석영기'에는 옹방강이 조선 금석문을 접촉한  정보  통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친필 원고본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자세하지는 않으나, 전문가들이 대략 이를 검토한 결과 역시나 추사 김정희가 지대한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원고 한 대목에서 옹방강은 관련 자료를 추사를 통해 입수했으며, 더구나 그 자료에 대해 추사는 이러이러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기록하고 있다.

 

추사 외에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 또한 많은 조선  금석문  정보를 옹방강에게 제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옹방강과 추사가 활약한 18-19세기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 간 학술정보 교류는 어쩌면 지금의 한-중 학술계보다 더욱 활발했을 수 있다. 일본에서 기증된 이번  기증품 목록에서 추사 친필 뿐만 아니라 여타 자료 또한 왜 주목해야  하는지를  세계 유일본 '해동금석영기'가 웅변하고 있다. (끝)

 

 

2006.05.11 17:31:50
추사 자료 한국기증 일본인에 국민훈장 서훈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한국 정부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친필 등 서화류 46점과 청나라 및 조선시대 고서 2천750여점을 한국에 기증한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稙.94)씨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주일 한국문화원이 11일 밝혔다.

 

라종일 주일 한국대사는 오는 18일 고령인 후지쓰카씨를 대신해 조카딸에게 서훈을 전달하기로 했다. 

 

또 후지쓰카씨의 소재를 파악해 문화재 환수에 큰 공로를 세운 최종수 과천문화원장에게도 국민포장이 서훈된다.

 

후지쓰카씨는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의 아들로 부친이 일생 수집한 자료 가운데 집에 소장해온 자료 일체를 경기 과천시에 기증한 바 있다. (끝)

 

 

2006.07.08 10:47:18
추사 관련 고서 기증 日후지즈카씨 별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평생 수집한 고서와 서화류 2천700여 건을 올초 과천시에 기증한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씨가 지난 4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과천문화원(원장 최종수)이 8일 전했다. 향년 94세.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 다수를 포함한 후지즈카 소장품에 대한 한국 기증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12월과 2월, 두 차례 일본에서 후지즈카 씨를 만난  김규선 추사연구회 사무국장은 "선생이 '나는 이번 6월에 죽을 것이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결국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도쿄 네리마구에서 혼자 살던 후지즈카 씨는 자녀가 없어 조카딸이 5일 시신을 화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고야 출신인 그는 아버지를 따라 식민지 조선에 와서 서울중학교 전신인 경성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돌아가 고치(高知)고교를 거쳐 도쿄대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했으며 교직에 몸담았다.

 

그는 올초에 도서 2천500여 책, 서화류 46점 등 총 2천700여 건에 이르는 소장품을 한국에 기증했다. 기증품들은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조선학 연구의 권위자인 그의 아버지가 베이징의 유리창(고미술거리)과 한국의 인사동 등을 돌며 구입한 방대한 컬렉션 중 2차 대전의 참화를 견뎌낸 것들이다. 

 

김규선 사무국장은 "후지즈카 선생 소장품으로 (일본에) 남아있는 것은 서양책 수백 책이 있는데 이것도 한국에 기증하기로 생전에 선생이 약속했다"고 말했다. 

 

후지즈카 씨는 자료 기증 외에 추사 연구에 써 달라며 200만엔(약 2천만원 상당)을 과천문화원에 내놓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그의 기증 정신을 기려 지난 5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했다. (끝)

 

 

2006.09.26 19:22:43
후지즈카 치카시 수집 추사 친필 특별전
29일부터 과천시민회관서 '추사 글씨 귀향전'
추사 친필 간찰첩 등 전시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추사 김정희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일본인 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수집한 추사 관련 자료들이 29일부터 과천시민회관에서 전시된다.

 

'추사 글씨 귀향전'에는 추사 김정희가 두 동생에게 보낸 간찰첩 등 후지즈카 치카시가 모은 추사의 친필 자료들이 소개된다.

 

후지즈카 치카시의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는 2월 부친이 평생 수집한 추사 관련 자료 일체를 과천시에 기증했다.

 

베이징 유학을 거쳐 경성제국대 교수를 역임한 후지즈카 치카시는 근대적 방법론을 통해 청대의 학술을 조명한 학자로 추사 김정희가 금석학이나 예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청대의 학술, 특히 경학에 정통한 사실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 자료는 후지즈카 치카시가 중국 베이징의 고미술거리와 한국의 인사동 등지에서 수집한 자료 중 26건으로 추사가 제자 우선 이상적(李尙迪)과 추사의 동생으로 청대 학계와 교류가 깊었던 산천 김명희(金命喜)에게 보낸 간찰, 그리고 초정 박제가(朴齊家), 영재 유득공(柳得恭) 등에게 추사가 보낸 청대 학자들의 글ㆍ그림 등이 포함됐다.

 

특히 추사가 40대 초반 두 동생 명희와 상희에게 보낸 간찰첩 '두 아우에게' 등 희귀자료들이 포함됐다. '두 아우에게'는 추사체가 확립되기 전의 추사 글씨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자료에는 또한 청대의 경학에 관한 주요자료인 '황청경해' 680책 등 고서적 외에도 후지즈카 치카시가 정리한 원고자료와 실물 사진 등도 두루 포함됐다.

 

주최 측인 과천시와 경기문화재단은 "전시 자료를 기증한 후지즈카 치카시의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가 7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신의 기증 자료가 많은 이들에게 유익하게 활용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이번 전시는 그의 유언을 실천에 옮기는 첫 번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7일까지. (끝)

 

 

 

2006.09.28 14:04:14
<서거 150주년 맞아 부활하는 김정희>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특별전..'잔서완석루' 등 첫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서거 150주년을 맞아 부활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등 관련 기관이 다투어 이에 즈음한 특별전을 개최한다.

 

추사학 연구의 선구자인 일본인 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수집한 추사 관련 자료가 올초 대량으로 과천시에 기증된 데 이어, 여기에서 골라낸 명품 특별전이 29일 과천시민회관에서 개막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사 김정희 : 학예(學藝) 일치의 경지'를 주제로 특별전을 연다.

 

간송미술관은 다음달 15일부터 2주간 추사 특별전을 개최하고, 삼성미술관 리움은 10월19일 개막해 내년 1월28일까지 계속될 '조선말기 회화전'에서 추사실을 별도로 꾸민다. 간송미술관 특별전 내역은 자세하지 않으나 리움 특별전 추사실에는 그의 서예작품 5점이 특별출연한다. 여기에는 보물 547호 반야심경첩과 죽로지실이라는 두 명품이 포함됐다.

 

다음달 3일 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관에서 개막해 11월19일까지 계속될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은 조금은 뜻밖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으로서는 최초의 김정희 특별전이다. 

 

김정희 관련 전시는 1932년 처음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20여 차례 크고 작은 규모로 개최됐으나 이 명단에 국립중앙박물관은 빠져 있었다.

 

이 자리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회화 '세한도'라든가 '불이선란도'와 같은 기존 전시를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되던 작품을 포함해 주옥 같은 명품 90여 점이 출품된다.

 

'김정희 명품 콜렉션'을 표방한 이번 전시에서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발문 전체가 완전 공개된다. 

 

손창근 개인 소장품인 세한도에서 김정희 원작은 가로 69.2㎝, 세로 23㎝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이를 감상하거나 역대에 소장한 사람들이 하나씩 감상문을 적어 붙여 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전체 길이가 10m가량이나 된다. 

 

그토록 저명한 김정희 특별전을 국립박물관이 아직 한 번도 개최한 일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대목은 김정희 원작 세한도에 붙은 모든 발문에 대한 완전한 해제가 이뤄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소문과 명성만 요란했지, 그에 걸맞은 실속있는 연구는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역사학자이자 한문학자인 하영휘 아단문고 연구실장에게 의뢰해 모든 발문에 대한 번역과 해제를 완료했다.

 

아마도 이번 김정희 특별전이 거두게 될 최대의 수확 중 하나일 것이다.

 

나아가 이 기획전에는 그동안 도판을 통해서만 알려진 예서작품 '잔서완석루'가 처음 공개된다. 

 

이 외에도 청대 저명한 금석학자이자 고증학자인 옹방강이 김정희에게 보낸 가장 이른 시기의 편지인 선문대 소장 '담계척독', 40대 초반 깔끔한 해서로 안평대군 사경첩을 논평한 글, 유배시절 용산 본가로 보낸 편지를 모은 '완당척독'(선문대 소장), 유배에서 풀려난 그가 제주도를 떠나 집으로 보낸 첫 번째 편지(선문대 소장),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도 처음으로 바깥 구경을 한다.

 

일본 고려미술관 소장 권돈인과 김정희의 산수화가 함께 표구된 족자 또한 최초 공개된다.

 

나아가 '묵소거사자찬'과 간송미술관 소장 '난맹첩'에 대해서는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

 

종래 '묵소거사자찬'은 김정희가 스스로 '묵소거사'라는 호를 짓고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표구 부분에 찍힌 인장 21개를 분석한 결과, '묵소거사'는 추사의 절친한 벗 김유근의 호이며 김정희가 그를 위해 써 준 것임이 밝혀졌다. 

 

또 '난맹첩'은 지금까지 명훈이라는 이름의 기녀를 위해 추사가 그려준 작품이라고 간주됐으나 김정희 편지 모음첩인 '완당소독'에 의해 명훈은 김정희의 전문 장황사(표구 제작자)임이 밝혀졌다. 

 

박물관 최응천 전시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로 인해 서예가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던 김정희가 금석학, 경학, 불교, 시문학,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와 업적을 남긴 19세기 동아시아 대표 지식인이었음을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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