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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접어 포개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신라금동관

by 한량 taeshik.kim 2020. 9. 4.


6세기 초반에 만들었다 추정하는 신라 적석목곽분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은 발굴 결과 금동관을 접어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저 금동관이 얼굴을 거의 온전히 가린 것은 분명하되 그렇다면 저걸 머리를 아예 다 덮어씌운 것인지 아니면 절반을 포개서 수건처럼 얼굴에 댄 것인지가 궁금해 조사단에 직접 확인한 결과 후자임이 확실하니 그것 관이 접힌 부분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라 한다.

얼굴 부분만 떼서 보면 이렇다.


 



앞선 관련 글에서 내가 잠깐 말했듯이 이 전통이 같은 경상도 문화권에서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면 부채를 저런 용도로 쓰기도 함을 본다,

부채로 저런 식으로 시신 얼굴을 가리는데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천년전, 그러니깐 저보단 대략 오백년 정도 빠른 서력기원 전후 이른바 통나무 목관묘에서 부채가림 풍습이 동시다발로 드러난다.

창녕 다호리를 필두로 김해 어느 곳이던가 경상도 지역에선 이런 매장풍습이 광범위하게 십여 곳 이상에서 보고됐다.







물론 부채는 온전한 실물로 전하는 것은 없고 자루만 남아 있고 또 화석형태로 뚜렷한 부채 모양을 남겨놓기도 했다.

이 부채는 새깃털을 이용했음은 분명하다. 왜 깃털인가? 왜 부채인가?

이를 풀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그걸 해명하는 작업만이 아니라 그 계승인 금관 혹은 금동관을 왜 썼는지를 해명하는 열쇠가 되는 까닭이다.

 

아래 그런 부채 출토 사례를 죽 나열해 본다. 

 

성주 예산리 제30호 목관묘

 

경주 탑동 목관묘

 

경산 압량면 목관묘

 

경산 압량면 목관묘

 

경산 하양 목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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