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한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를 보면
백제 부여창과 고구려 군 전투장면이 나오는데 다시 써보면 아래와 같다.
때마침 날이 밝자 목에 경개頸鎧를 입은 자 1騎, 징을 꼽은 자鐃자는 자세하지 않다 2騎, 표범 꼬리를 끼운 자 2騎 모두 합해 5騎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와서 묻기를 “어린아이들이 ‘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餘昌이 “姓은 (高麗 왕실과) 同姓이고 관위는 杆率이며 나이는 29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百濟 편에서 반문하니 또한 앞의 법식대로 대답하였다. 드디어 표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줄, "표를 세우고"라는 말.
무슨 뜻일까?
원문에는 遂乃立標而合戰으로 되어 있다.
표를 세운다니, 무슨 표를 세운다는 것일까?
이에 대한 열쇠는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에 그 열쇠가 있다.
일본에는 기인旗印 혹은 마인馬印이라 부르는 것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旗印이 원형에 가깝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은 馬印으로 하여 일본어로 우마지루시うまじるし라 읽는다.
이것이 뭔고 하니 이렇게 생겼다.
모양을 보면 일본사극에서 본 기억들이 있으실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하는고 하면 전쟁이 시작될 때 장군 옆에 세운다. 지휘관 위치를 아군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병력을 퇴각할 때는 이 깃발을 내린다고 한다.
위에 백제와 고구려가 싸울 때 양쪽 군대가 표를 세우고, 하는 입표란 필자가 볼 때
바로 저 일본사의 기인, 혹은 마인의 원형이 아닐까 한다.
입표 자체를 마인이라 본다면 아마도 기인 혹은 마인의 가장 빠른 기록이 저 흠명기 백제-고구려 전투 기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 흠명기의 백제와 고구려군이 싸우는 장면은 보면 볼수록 후대 헤이안 시대 이후 무장들의 전투장면과 많이 닮아 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던 모습 원형은 원래 저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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