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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썼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조선시대 호적이 그대로 지금 남아 있다고 한다면
족보 태반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 했다.
우리나라 17-18세기 호적을 보면
지금 통용되는 족보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인구의 50-60퍼센트는 노비라는 것을 호적에서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호적의 태반은 다 사라져서
우리나라 사람들 태반은 그런 염려가 없어졌다.
우리나라에 지금 조선시대 호적이 남아있는 동네는 몇 안 된다.

그건 그렇고.
호적은 호적이라고 쳐도
족보만 19, 18, 17세기 족보를 따라 올라가도
상당히 족보가 많이 변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 족보에서 서자의 표기는 더 이상 사라졌지만
19세기 족보만 봐도 서자는 서자라고 그대로 써 놓은 족보들이 있고
아예 서자는 족보에서 통채로 빠져버린 족보도 있다.
게다가 이전에 없던 후손들이 20세기 들어와 갑자기 족보에 출현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조금 역사가 길다 싶은 집안은 과거의 족보가
1600년대 부터 1700, 1800년대까지 다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족보들을 대조하면 족보가 상당히 많이 그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런 사실은 16세기부터 족보를 만들어 낸 종족의 이야기이고,
19세기나 20세기에 처음으로 족보를 찍어낸 집안의 경우에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이전 족보를 대조할 수가 없으니
그냥 그 기록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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