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병풍屛風이라는 말을 내가 접한 이른 시기 문헌 중에는 《세설신어世說新語》가 있지 않나 하는데, 어디다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을 차기箚記한 것이 있기는 하나 당장 찾을 수 없어 아쉽기는 하다.
병풍이라 하면 쓰임이 요새는 한정한 느낌이 있어 주로 죽음과 연동하니 제사 혹은 차례에선 없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神이 거주하는 공간의 표식이요 상징이다.
저 병풍을 일상으로 도로 끌어내린 깡패 영화가 있어 최민식 이정재 황정민 박성웅 송지효가 주연한 《신세계》라, "거참 죽기 딱 좋네"라는 명대사가 회자하나 깡패 잡는 경찰 최민식이 깡패 두목 절간 장례식장에서 살아남은 깡패들을 향해 하는 말
"니들 저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고 싶어?"
가 나한테는 각인한다.
저 영화가 병풍을 다시금 우리네 일상에 소환하는 결정타이긴 하지만 곰곰 뜯어 보면 병풍을 죽음으로 국한하려는 음모에 다름 아님을 안다.
애초 병풍은 실용이었으니 글자 그대로 바람막이였다. 나무 혹은 흙이 주된 건축재료인 동아시아에서 바람은 심각한 장애였다.
물론 이 역시 계절성이 농후해 여름이야 바람을 일으켜야 하니 그런 점에선 바람막이 병풍은 실용의 쓰임은 상실하고 그 자리를 부채나 선풍기에 내주고 말지만, 겨울은 그렇지 아니해서 우풍을 막느라 고민을 거듭하게 되니 병풍은 그 바람을 막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낸 설비였다.
이런 광범위한 쓰임이 마침내 데코레이션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니 자고로 행세께나 하는 자리에는 모름지기 구비해야 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병풍은 삶과 죽음이 모두 애호한 데코다. 요새도 대통령실 접견실에는 병풍이 빠지지 아니하고 재벌가 또한 그러해서 모름지기 있어야 함을 가식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모든 자리에 병풍은 빠지지 아니한다.
우리는 병풍의 노예요 꼭두각시다. 그것이 시키는 대로 그것이 마련한 자리에서 그것이 짜준 각본대로 우당탕탕 왁자지껄하다 시간이 되면 내려가는 광대일 뿐이다.
몇년 전 조선시대 병풍으로 재미 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그 여세를 몰아 다시금 병풍잔치를 꺼내들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전시를 병풍2라 한 것이다.
출품작 중 일부는 지난 시절 1차전과 겹치기는 하나 새로운 얼굴이 대거 등장했으니 자체 소장품만이 아니라 외부기관들에서도 주제에 걸맞는 작품을 대거 대여했다.
이 두 차례 걸친 블록버스터 병풍전은 향후 이를 꿈꾸는 박물관미술관들한테는 좌절을 안겨주겠지만 향냄새 맡으러 귀신의 영역으로 들어간 병풍을 다시금 우리네 일상으로 소환하게 될 것이다.
70여 점을 때려박은 저번 전시에 견주에 51점인가 출품했다는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그 널찍널찍한 전시공간 구성이 좋다.
나아가 전시품은 주된 관람층인 성인 눈높이에 맞추어 고정했고 무엇보다 관람객과 전시품간 간극을 좁혀 정밀 세밀 검증을 가능케 했다.
연합뉴스 K컬처아카데미 광화문사진관(사진과 미술)이 그 1기 피날레로 이 병풍전 관람을 했다.
아카데미가 현장을 떠날 순 없어 내가 배운 도둑질로 이런 자리들을 가미하곤 하는데 더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봄이라서 그런가? 가야 하는 전시가 항하사 모래알 숫자보다 많다.
한 시간 반 동안 친절히 안내해준 편지혜 선생이 고맙기 짝이 없다. 전승찬 고문님을 비롯한 다른 미술관 관계자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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