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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보령 성주사의 전신 백제 오합사[烏合寺, 오회사烏會寺, 오함사烏含寺] 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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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육





백제 멸망 후 통일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무염대사가 머무르면서 크게 일으켰고,

신라 문성왕이 성주사라 고친 절로(위키백과 인용), 백제시대에는 오합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절터다.

백제시대 가람 흔적은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여 알려졌는데,

목탑지(추정, 지하로 구축된 축기부)-금당지(지상으로 올린 기단토)-강당지(지상으로 올린 기단) 그리고 강당 좌우로 정사각형 소규모 건물 그리고 이 정사각형 건물지 남편으로 회랑과 별도건물이 배치된 형태로,

그 모습이 백제시대 부여의 사찰터와 같다.

특히, 그 배치 형태가 577년의 절대 년대가 확인된 왕흥사지와 흡사하고, 567년도의 능산리사지와도 비슷하다.

오합사는 법왕이 전쟁에서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었다고 하여 599년에 창건되었다고 보기도 하나 본업本業 12년으로 기록되어 616년에 창건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고고학적으로 성주사 전신인 오합사 창건연대를 연화문수막새와 벽돌과 돌로 축조한 전석혼합기단을 통해 백제 말 또는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7세기 중 후반기 경으로 추정하기도 한 연구자가 있긴 하지만,

6세기 중후엽의 가람배치 형태와 유사한 오합사 창건연대는 6세기 후반을 즈음한 시점으로 보고 싶다.

이는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펴낸 발굴보고서의 내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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