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27)
복어회. 연합뉴스 오수희
무제 두 수(無題二首) 중 첫째(1932년 작)
[現代中國] 루쉰(魯迅) / 김영문 選譯評
고향 땅 캄캄하게
검은 구름에 갇혀 있고
긴 밤 아득하게
새봄을 막고 있다
세모에 이 쓸쓸함
어떻게 견디랴
한 잔 술 잡고서
복어를 먹는다
故鄕黯黯鎖玄雲, 遙夜迢迢隔上春. 歲暮何堪再惆悵, 且持卮酒食河豚.
복어수조. 이 복어 먹을 수는 있을까? 연합DB
중국 현대 대표 작가인 루쉰도 구체(舊體) 한시를 썼단 말인가? 그렇다.
60수가 넘는 루쉰의 한시가 남아 있다. 그의 마지막 한시가 1935년 문경지우 쉬서우창(許壽裳)에게 써준 「을해년 늦가을 우연히 쓰다(亥年殘秋偶作)」이므로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까지도 구체 한시를 창작했음을 알 수 있다. 루쉰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같은 연배다. 만해는 1879년생, 단재는 1880년생, 루쉰은 1881년생이다. 이들은 모두 전통 사회에서 동양고전의 훈도를 받고 성장한 전통 지식인이면서도, 서구의 학문과 문물을 수용하여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열망한 근대지향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이들의 문학·학문·사상·행동에는 전통의 터널을 통과하여 근대의 광장으로 도약해가는 다양한 자취들이 뒤얽혀 있다.
특히 이들의 시문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전통과 근대의 자장은 그 자체로 이미 이들 문학의 지난한 박투를 상징하는 셈이다. 루쉰의 구체 한시는 구시대의 대표적 문학 장르라는 점에서 암흑을 상징하지만 그 암흑 속에 루쉰 당대의 구체적 현실을 그려넣고 자신의 분노와 질타와 인내와 희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루쉰 문학의 보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역사적 중간물’이다. 루쉰의 한시는 형식에 있어서 중국 전통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문학으로서의 존재방식은 음풍농월이나 무병신음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있다. 이 시도 그렇다.
루쉰 할배
검은 구름, 긴 밤, 세모는 모두 ‘철의 방(鐵屋子)’ 같은 당시 현실에 대한 은유다. 하지만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마지막 구절이다. 루쉰은 추운 겨울날 왜 복어 요리를 먹을까? 구체적으로는 1932년 상하이 시노자키의원(篠崎醫院)의 의사 츠보이 요시하루(坪井芳治)와 복어 요리를 먹은 사실을 가리킨다. 하지만 내포된 의미는 훨씬 신랄하고 절실하다.
루쉰은 『차개정잡문말편(且介亭雜文末編)』 「반하소집(半夏小集)」에서 “독을 품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無毒不丈夫)”라고 하면서 “강력한 독은 글로 쓰지 않은 말에 묻혀 있고, 극도의 경멸은 무언 속에 숨어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침묵의 현실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그 침묵 속에 맹독이 자라고 있음을 비유한 언급이다. 복어야말로 독이 있는 어물이 아닌가? 맹독을 품기 위해서는 겨울에도 부지런히 복어 요리를 먹을 일이다.(루쉰 지음, 김영문 옮김, 『루쉰 시를 쓰다』, 역락, 2010, 「옮긴이의 말」과 해당 시 「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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