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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시절 아님에도 서둘러 찾아간 꽃 소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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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8)


동짓날 혼자 길상사에서 놀다[冬至日獨遊吉祥寺] 


[宋] 소식 / 김영문 選譯評 




구례 화엄사




우물 바닥 약한 양기

돌아 왔는지 아닌지


부슬부슬 찬 비가

마른 풀뿌리 적시네


어느 누가 다시 또

소 선생 행색처럼


꽃 시절 아닌데도

혼자 오려 하겠는가


井底微陽回未回, 蕭蕭寒雨濕枯荄. 何人更似蘇夫子, 不是花時肯獨來.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한다. 밤이 가장 길어 다시 양기를 처음 회복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복양절(復陽節)’이란 명칭도 그래서 생겼다. 


아직 입춘까지는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라는 혹한기를 거쳐야 하므로 봄을 이야기하기는 이른 시기다. 그런데도 소동파는 동짓날 혼자서 길상사로 놀러갔다. 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일선양맥(一線陽脈)의 의미를 서둘러 확대했다. ‘우물 바닥 약한 양기’가 바로 ‘일선양맥’ 즉 ‘새로 회복한 한 줄기 양기’다. 



구례 화엄사




『주역(周易)』 「복괘(復卦)」의 형상을 보면 매우 명확하다. 「복괘」는 상괘가 땅(地)을 상징하는 ‘곤(坤☷)’이고, 하괘가 우레(雷)를 상징하는 ‘진(震☳)’이다. 따라서 보통 ‘지뢰복(地雷復)’이라고 부른다. 상괘를 위에 놓고 하괘를 아래에 놓아 겹치면 여섯 효(爻) 중에서 맨 아래 초구(初九)만 양효이고 그 위 다섯 효는 모두 음효임을 알 수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우물과 같고 우물 밑바닥에 미약한 양효 하나가 가로놓여 있는 모습이다. 


초구 효사에 이르기를 “머지않아 회복함이니 후회에 이르지 않고 크게 길하다(不遠復, 无祗悔, 元吉)”라고 했다. 조만간 새로운 봄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복(復)은 회복(回復)이자 부활(復活)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태극기에 쓰인 ‘불원복(不遠復)’의 의미가 바로 이 효사에 근거했다. 부활을 상징하는 예수의 탄생일도 동지 무렵이고, 이 때문에 옛날 중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양동지(洋冬至)’라 부르기도 했다. 사악하고 컴컴한 기운을 단 번에 쓸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오늘 땅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은은한 우레 소리가 머지않아 새봄의 양기를 회복하여 마침내 찬란한 꽃을 피우리라. 소동파가 찾아간 절 이름도 ‘길하고 상서롭다(吉祥)’는 뜻이 아닌가?



*** 김태식補 ****


2015년 2월, 서울에서는 캄캄한 봄 소식 서둘러 맞으려 남녁으로 달린 적 있다. 구례 화엄사로 냅다 질렀다. 서울보다 남쪽이긴 하나, 산중이라 여직 찬바람 솔솔 불었다. 그래도 양지바른 언덕으로는 저 풀때기가 읍내 다방 미스김 찾아 쌍화차 한 잔 마시며 다리 쓰다듬으러 가는 아버지 창포기름 잔뜩 바른 머리카락 모양으로 번질거렸다. 솔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저곳에서는 어느새 졸음이 오더라. 봄은 그렇게 도둑놈처럼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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