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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부여 가림성이 토해 낸 원형 석축 연못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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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 사진들은 모두 백제역사문화연구원 혹은 그 조사원 성현화 선생 제공임을 밝힌다. 나아가 어제 둘러본 자문위원 간 일치되지 아니하는 부분들이 있어 조사단이 자료를 정리하는 데 시일이 좀 걸릴 것이라 한다.  
 
백제역사문화연구원이 부여군 의뢰로 부여 가림성 성벽과 그 안팎을 짼 모양이라, 이르기를 이번 8차 조사는 가림성 성벽 중에서도 북쪽 성벽 안쪽을 조사했다는데, 아마도 이 쪽이 성 안쪽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지점이라 해서 판 듯하다. 

보통 산성 이런 구간에서는 그 출현하는 유구 양상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어, 성벽 안쪽에다가 일단 물을 연못에서 모았다가 배수구를 통해 바깥으로 빼내는 구조라,

이 연못은 거의 예외없이 급류가 그대로 쓸려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물길을 뺑글뺑글 돌린 다음에 톡톡 떨어지는 구조다. 

 

이거 보면 성벽 바깥도 조사를 했다. 트렌치 팍팍 넣어서 원없이 조사했다. 왜? 내부가 궁금하니깐

 
왜 이렇게 하는가?

이게 무슨 대단한 기술 같지만, 경험으로 안다. 산성에 물이 날 일이 년중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는 폭우 때다. 그때는 사정없이 계곡으로 사나운 물길이 들이치는데, 성벽은 예외없이 이때 날아간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폭포수 같은 물길을 일단 안정화할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일단 사나운 물길은 숨을 고르게 한 다음, 웅덩이에 모았다가 서서히 빼내는 구조다. 

이 웅덩이를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집수지集水池라는 요상한 말을 쓰는데, 이거 비학술 용어의 전형이라, 池 자체가 집수集水를 전제로 한 것이라 하나마나 한 말이며, 그냥 한국말로 연못이라 하면 된다.

연못이라는 일상 용어가 싫고 그래서 집수지라 하면 괜히 있어 보인다 생각한다면 내가 할 말이 없다. 

 

저런 물웅덩이는 예외없이 신라시대 소산이다. 그 연못 바깥을 빙둘러 배수로를 낸 모습을 본다. 성벽이 굽은 모양을 봐라. 계곡이라서 마치 요새 댐을 쌓듯이 안쪽으로 성벽을 밀어넣어 반달모양으로 했다. 왜? 그래야 위에서 내려치는 수압 토압을 견디기 때문이다. 이런 계곡에는 예외없이 연못이 안쪽에 있다.

 
 
이런 물웅덩이 연못도 이젠 하도 파제끼니 문화권별 차이가 있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형 혹은 원추형으로 파고 내려가고 열라 잘 만든 구조라면 예외없다. 신라다. 

가림성이라면, 백가라는 권신이 백제 동성왕인가를 암살한 데로 저명하거니와, 현재까지 발굴성과로 봐서는 백제가 처음 쌓은 것만은 틀림없고, 이후 신라도 활용했으며, 고려 조선시대까지 죽죽 써먹었다. 지금도 써먹는다. 어떤 데서? 영화 찍느라 그 느티나무 매양 단골로 나와서 그 인기는 방탄이나 블랙핑크급이다. 

 

안쪽 연못이 물이 넘치면 밖으로 빼내야 한다. 저게 배수구인데 장대한 시간이 흐르면서 삐뚤라져서 그 본래 모습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내부를 파제끼면 완연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로대, 신라의 전형적인 배수로는 위쪽에 좁아지는 단면 방형이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 결과 백제~조선시대에 이르는 성벽과 성내부 시설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가림성 변천과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이렇게 조사한 건 좋은데, 저걸 어찌 후속 처리할지 모르겠다.

 

 
 

조사단은 이걸 백제성벽 뒤채움이라 한다.

 

조사단은 백제 초축 성벽 입면이라 한다.

 

조사단은 백제 초축 성벽이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지 사진만으로는 모르겠다. 다음 사진을 보자.

 

백제 초축이라고 조사단은 말한다. 부여나성이 이 기법 같은 느낌이 있다.

 
아래는 성현화 선생 사진이다. 
 

무슨 글자인가? 城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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