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우리나라 삼남지역은 양반과 평민, 노비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을 것이라 본다.
그 이유를 든다면 이렇다.
우선 일기에서 나오는 상황이 거의 비슷해 보이고,
우리나라의 평민, 노비, 특히 노비의 비율이 조선시대 내내 증가하는 것은
지역적 특성이 아니라 이전에도 말한 것 같이 산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그리 되어 있으니 노비는 안 늘어나고 배길 수가 없다는 점.
이들 지역의 노비 해방과 급감은 18세기 후반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급물살을 탔으리라 본다.
그런데-.
북방지역은 어떨까.
사실 북방사민이라 하면 우리는 함경도 지역만 생각하지만
평안도 지역도 역시 조선시대 사민이 이루어지던 지역이라,
이들 지역에는 부족한 사람수를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 옮겨갈 사람들이 뽑혔고,
그렇게 그 사람들로 채워진 지역이었다.
필자가 생각컨대 이들 지역은
삼남지역과 인구 구성이 상당히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본다.
첫째는 북방 사민으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유력 사족이 거의 없다는 점.
다시 말해 남방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노비사역의 토지 소유주로 등극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었을 것이라 본다.
이것은 평민과 노비도 마찬가지로,
남방과는 인구구성이 달라 양반과 노비가 적고 평민이 보다 많은 비율이 아니었을까.
상식적으로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지역이 그 지역 산출로 북방을 지켜내기에 매우 빠듯한 지역이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사실상 세금의 원천이 되는 평민을 최대한 늘려 놓지 않으면,
이 지역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점,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삼남지역은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외거노비들에게서 신공을 거두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북방 지역에는 신공을 받으러 파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결론은 뭐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평안도, 함경도 등 북방 지역은
삼남지역보다 자유민인 평민이 훨씬 많은 인구구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 지역은 노비 사역이 삼남지역처럼 두드러지지 않고
사족들도 삼남지역의 사족들과 성격을 달리했으리라 본다.
물론 필자의 추정이긴 한데,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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