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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

"연구의 완성은 보고를 넘어서는 통찰" 마르크 블로크의 핵심을 뚫는 통찰

by 日莫途遠 2026.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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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은 연구에 있어 훌륭한 도구이지만, 미세한 슬라이드가 무더기로 있다고 해서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Marc Bloch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1878~1956)과 함께 아날역사학의 문을 열어제낀 프랑스 역사학도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의 말이다. 

훌륭한 통찰이다. 

필자가 지난 30년간 wet lab을 끌고 오면서 60이 다 되어 느낀 생각과 같다.

그야말로 맞는 이야기다.
 

2026년 6월 23일(현지 시간) 팡테옹Pantheon에서 열린 레지스탕스 투사 마르크 블로흐Marc Bloch와 그의 아내 시몬 비달Simone Vidal의 안장식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두 사람의 사진이 걸린 배경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 )


현미경은 위대한 도구다. 

현대 과학을 만든 아버지 같은 기구다. 

그러나 현미경 슬라이드 관찰 데이터가 무더기로 있다고 해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관찰 데이터와 보고가 수백 편이 되더라도 

한 연구자의 연구의 완성은 그런 데이터 관찰 보고의 차원을 넘은 "그 무엇"이라는 뜻이다. 

막스 블로크는 더 말한다. 

There is no waste more criminal than that of erudition running ... in neutral gear, nor any pride more vainly misplaced than that in a tool valued as an end in itself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학문적 박식함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헛되이 작동하는 것만큼 심각한 낭비는 없으며, 수단에 불과한 것을 그 자체로 목적이라 여겨 자부하는 것만큼 헛된 자만도 없다.

정말 필자처럼 나이 든 학자로 평생을 과학적 데이터의 산출에 몰두한 이에게 훅 치고 들어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맞는 말 아닌가? 

필자가 나이 60 가까와 이런 점에 천착하여 dry lab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안도한다. 
 
*** [편집자주] ***
 
한국고고학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보고만 있고, 통찰이 없으니 말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발굴성과 보고밖에 없다.

연구라 해서 던지는 것들도 마찬가지라서, 보고 수준을 넘지 못하고, 그 무수한 보고는 말할 것도 없이 고고학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그림 놀이에 도끼자루가 썩고 말았다.

저것이 수단이지 어찌 목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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