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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비류왕(比流王)

by taeshik.kim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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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비류왕본기 : 비류왕(比流王)은 구수왕 둘째 아들이다.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남을 사랑하였고 또 힘이 세어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民間]에 있었지만 명성은 널리 퍼졌다. 분서왕이 죽자[終] 비록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이로써 신하와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5년(308) 봄 정월 초하루 병자에 일식이 있었다. 9년(312) 봄 2월에 사신을 보내 순행하면서 백성의 질병과 고통을 위문하고, 홀아비, 홀어미, 부모없는 어린 아이, 자식없는 늙은 이[鰥寡孤獨]로서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에게 곡식을 한 사람당 세 섬을 주었다. 여름 4월에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였다. 해구(解仇)를 병관좌평(兵官佐平)으로 삼았다. 10년(313) 봄 정월에 남쪽 교외[南郊]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는 데 왕이 제물로 쓸 짐승을 친히 베었다. 13년(316) 봄에 가물었다. 큰 별이 서쪽으로 흘러갔다. 여름 4월에 서울[王都]의 우물물이 넘치더니 검은 용이 그 속에서 나타났다. 17년(320) 가을 8월에 궁궐 서쪽에 활쏘는 돈대[射臺]를 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활쏘기를 익혔다. 18년(321) 봄 정월에 왕의 서제(庶弟) 우복(優福)을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삼았다. 가을 7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나라 남쪽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22년(325) 겨울 10월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풍랑(風浪)이 서로 부딪치는 것과 같았다. 11월에 왕이 구원(狗原) 북쪽에서 사냥하여 손수 사슴을 쏘아 맞혔다. 24년(327) 가을 7월에 붉은 까마귀와 같은 구름이 해를 끼고 있었다. 9월에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성(北漢城)을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군사를 발동하여 토벌하였다. 28년(331) 봄과 여름에 크게 가물어서 풀과 나무가 마르고 강물이 말랐다. 7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이 해에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30년(333) 여름 5월에 별이 떨어졌다. 왕궁에 불이 나서 민가까지 연달아 태웠다. 가을 7월에 궁실을 수리하였다. 진의(眞義)를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겨울 12월에 우뢰가 쳤다.32년(335) 겨울 10월 초하루 을미에 일식이 있었다. 33년(336) 봄 정월 신사에 살별[彗星]이 규(奎) [별자리]에 나타났다. 34년(337) 봄 2월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와서 예방하였다. 41년(344) 겨울 10월에 왕이 죽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1대 비류왕(比流王)은 구수(仇首)의 둘째 아들인데 사반(沙泮)의 동생이다. 갑자년에 즉위해 40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계왕본기 즉위년 : 계왕(契王)은 분서왕의 맏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용감하였으며 말타고 활쏘기를 잘하였다. 처음 분서왕이 죽었을 때 계왕은 어려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비류왕이 재위 41년에 죽자 즉위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근초고왕본기 즉위년 : 근초고왕(近肖古王)은 비류왕 둘째 아들이다. 체격과 용모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계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은 비류(比流)의 둘째아들이다. 병오년에 즉위해 29년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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