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분장을 할 때, 늘 고민이 된다. 어떤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조선시대일까? 아님 근현대를 해야 한다고 할까? 이런 고민 말이다.
우리 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곳이고, 그래서 저 멀리 조선시대를 전시할 수도 있고 가깝게는 지금 현재를 전시해야할 수도 있다.
전시에서 어느 시대를 다루든 고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어느 쪽이 맞느냐는 담당자의 성향 문제이다.
나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전시를 좋아한다. 어차피 찾을 수 있는 유물이 한정되어 있으니, 유물의 소재지를 찾는 데 들어가는 공력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에 근현대사 전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조선시대를 다루는 전시보다 힘들어한다는 뜻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자료의 출처 찾기에 들어가는 공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이미지를 찾기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다.
어떤 때는 원하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박물관에 있는 웬만한 개화기 외국 서적을 다 뒤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출처를 달지 않는 연구자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주제에 맞는 인터뷰이를 찾는 어려움이다. 이거야 말로 근현대 전시를 준비하는 가장 힘든 것이 아닐까.
생각보다 어려운 인터뷰
현대사 전시에서 구술 인터뷰를 넣는 것은 전시의 이야기를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사람의 말은 힘이 있다. 사실에 입각한 드라이한 글 한 줄보다 그 사실을 겪었던 사람의 말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을 더 끌어들인다.
한편으로는 구술 인터뷰는 일종의 증언이다. 그들의 증언은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구체적인 기억을 가진 이를 인터뷰이로 선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물어물어 찾기도 하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나는 공모전을 두 번이나 열어봤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어제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저 멀리 한달 전으로 가본다면? 더 나아가 20년 전으로 가본다면? 안개처럼 뿌옇게 기억할 수는 있어도 어제의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다는 데 있다. 그래서 현대사 전시를 할 때는 기억이 또렷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야기가 임팩트가 있는 분을 선정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분을 만난다.
그 만남은 한 번에 끝나는 경우는 잘 없다. 대부분은 전화로 한 번 이야기를 듣고, 그를 바탕으로 다시 질문지를 만들어 직접 찾아뵙고 인터뷰를 한다. 더 확인해야 할 경우는 이후 더 만나 뵙거나 전화로 확인할 때도 있다.
장시간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야기가 저 멀리 갈 때가 허다하다. 웬만하면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듣고 있지만, 너무 멀리 간다 싶으면 다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와야 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인터뷰가 질문하고 답하는 단순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터뷰에도 스킬이 필요함을 종종 느끼곤 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구술사에 대한 수업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에너지를 빼앗기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를 받기도 하는 인터뷰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너지가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의 경우다. 인터뷰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할 때면, 너무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할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늘 인터뷰이의 마음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니 어떤 때는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런 감정 이입은, ‘이 분들의 기억을 잘 구현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여, 일종의 일에 대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인터뷰는 J서적과 관련된 인터뷰였다. 그동안 했던 ‘전차’나 ‘백화점’ 인터뷰와 달리, 가장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더욱더 애착이 가는 인터뷰였다.
만약 지금의 직장이 문을 닫아 먼 훗날 전시가 된다면, 나는 저렇게 애정을 갖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터뷰를 하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애정을 듬뿍 담아 말씀해주셨다.
“○○선생님께 J서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라고 질문 드렸을 때,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곳”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많았던 것이 제일 인상 깊었다.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의 기억이 담긴 곳인 느낌인걸까. “우리 잘 전시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전시를 하면 할수록,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전시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 물건이 있게 된 것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에 의해 물건의 맥락이 생기는 것이다.
조선시대 전시라면 물건과 기록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추적한다. 근현대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기록과 기록 사이에 비어있는 부분은 구술 인터뷰로 메우면서 혹은 구체화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사라질 순간의 기억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 정확히는 우리 박물관의 조사과 선생님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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