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서 생각한다.
‘출근하기 싫다. 침대에 더 누워있고 싶다.’
5분간 계속 침대에서 꼼지락 거리다가 겨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서는 꼴은 고등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꽤 되었고, 심지어는 직장생활한지도 꽤 되었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적응이 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아마도 퇴직 전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출근길도 비슷하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지하철을 타고 40분을 가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광화문 역. 이곳을 벌써 10년 가까이 오르내렸다.
그러고 보면 학예사 생활을 꼽아보니 어느덧 10년을 넘겼다. 일반적으로 이 바닥 사람들은 학예사가 아니라 학예보조인 연구원 생활부터 시작하니, 연구원 때부터 친다면 박물관이라는 곳을 직장으로 삼은 지는 10년을 훌쩍 넘기게 된다.
그리고 연구원 생활을 지금의 직장에서 처음 시작했으니, 이 근처를 배회한지가 정말 10년이 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구체적으로 세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적고나니 체감이 된다. 무언가 끔찍한 느낌이다. (더 구체적으로 쓰면 나이가 드러나니 쓰지 않겠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10년을 넘긴 직장생활은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전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특성 탓일 것이다. 다른 이유를 대본다면, 생각보다도 일이 루틴하게 돌아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직장생활의 즐거움이 크지 않아서일까라고 또 다른 이유도 찾아본다.
그래도 변명해보자면, 직장생활이 마냥 즐겁다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직장생활이 즐겁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어쩌다 가끔 TV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저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출근하는 길이 너무 즐거웠어요.’라 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이런 것은 극히 드문 케이스일 것이다.
그래도 직장생활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있긴 하다. 아주 사소한 즐거움이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점심시간이 될 수도, 동료들과의 담소가 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일하면서 느끼는 작은 성취감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해 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내 주변의 대부분이 이 바닥에 일하기 때문에 타 직업의 즐거움은 책이나 브이로그 등을 통해서 밖에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이 힘겨운 직장생활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임에는 틀림없다.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
나도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기분이라 부끄러운 마음에 남에게 말하기도 무엇한 것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없어 나만이 즐길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이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나의 즐거움이다.
나의 즐거움을 박물관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치환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한번도 이런 것을 동료들이나 선배들과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서로 말하기엔 낯간지러운 말이니 말이다.
그래도 일단 이번 기회에 꺼내두면 말하기에는 편할지 모른다.
그래서 몇 가지를 꺼내두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유물을 꺼내 볼 때, 가끔씩 느끼는 즐거움. 특히 옛날의 흔적들을 어쩌다 발견하게 되면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토기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하는 지문들 같은 것이 있다. 저 멀리 선사시대에 토기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지문 같은 것. 한번 슬며시 내 손을 대보면 그 사람과 닿아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화첩을 꺼내 넘기다보면 마음에 드는 화면이 나올 때, 그때의 즐거움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쁜 그림이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란. 순간 머리 속에 엔돌핀이 도는 기분이었다.
전시 준비를 위해 내부 시스템에서 유물 정보를 검색하다보면, 재밌는 유물들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한 번도 전시나 책을 통해 공개되지 않아,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는 없는 경우는 아쉽지만 나만이 즐길 수밖에 없다.
이건 너무 재밌어 하면서 전시에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속으로 매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귀여움을 왜 아무도 몰라주지?’라던가 ‘이거 정말 재밌는데 왜 캐치를 못하지’같은 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직장생활은 이런 소소함을 쌓아 버티는 것일 것이다.
앞으로 다닌 것보다 몇 배의 시간을 더 보내야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나의 직장생활을 지탱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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