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옛날부터 해도 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곤 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나 들어가서는 ‘현실과 유리된 것 같은 과를 나와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내지는 ‘지금 하는 것은 한량 놀음이나 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고민을 했다.
실용학문을 하는 곳이 아닌 과를 들어가서 한다는 고민이 저런 것이었다. 저런 고민을 했을 것이었으면, 과를 선택하기 전에 했어야 했는데 고민의 스타트 지점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현실에 떠밀려서 어쨌든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나마 이 과를 나와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직장에 들어와서는 별 생각 없이 다녔다. 그냥 저냥 만족하며 다닌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박물관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후위기가 현실이 된 순간
아직 올해의 여름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단정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올해 여름은 정말 힘들었다고.
이전에는 열대야가 한 10일 정도만 지속되었다면, 이제는 한 달 가량 열대야가 이어지는 것 같다. 더 좌절스러운 것은 아직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사랑하는 J 덕분에, 빙하 위에서 바다를 떠다니는 북극곰이랄지 의류 염색 안료 색을 띄는 갠지스 강 같은 것들을 매체를 통해 많이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새삼스럽지는 않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북극곰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온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인류도 피해를 보는 이야기는 기후학자들이 이전부터 해왔던 경고였다.
각 나라들은 파리 기후협정도 맺어 기후위기를 탈피하자고 했지만, 그 협정의 수행은 잘되어 가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아니 사실 나는 ‘내가 이 종이컵 하나 안 쓴다고 해서 지구에 큰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의 현실도 힘든 마당에 기후위기는 너무나도 큰 문제 같고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이야기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여름같이 기후위기가 피부에 와 닿은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가 정말 아프긴 한 모양이야.”라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박물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도 화두다. 그간 이 부분에 워낙 관심이 없어서인지, 이 용어가 최근에 나온 줄만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1987년에 나온 용어라 한다. 교육프로그램을 만들 때 참고하려 교과서를 보니, 교과서에서도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개념이었다.
‘지속가능성’은 처음에는 환경 문제와 관련되어 나온 용어이다. 좁게는 환경에 국한될 수 있지만, 넓게는 경제 사회까지도 포괄하는 단어다.
지금 세대가 미래 세대의 것을 미리 쓰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확장되어 쓰는 지금도 환경과 연관되어 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지난 ICOM에서도 이 지속가능성이 주제였다. 그래서인지 올해 상반기에 다녀온 유럽의 박물관들에서도 지속가능성과 환경 문제를 다루는 기획전을 하거나, 혹은 상설전에서도 지속적으로 환경 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유럽은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정도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녀와서 그간 다녀온 박물관들에 대해 복기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가령 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박물관들은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혹은 지속가능성이 환경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더 나아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까지 거론되는 개념이라면 지역 박물관들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등등 말이다.
너와 나를 알아가기 위하여
각 박물관이 환경 전문 박물관이 아닌 이상, 환경을 소재로 하는 전시야 말로 지속될 수는 없다. 그리고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환경을 아끼자고 말해봤자 그것이 사람들에게 크게 와 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박물관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힘을 보태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부분이 나의 고민에서 풀리지 않고 맴도는 지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슬아 작가의 <날씨와 오늘>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이 부분을 위해 참고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동네 도서관에서 이슬아로 검색하니 제일 상단에 있던 책이라 빌렸을 뿐이다. 그런데 나의 고민을 풀어줄 열쇠 같은 글이 있었다.
그 부분을 잠시 발췌하자면 이렇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굉장한 개인인지를 가르치곤 한다. 개인이 소비하지 않기로 한 선택들이 모여 기업과 정치와 과학을 들썩들썩 움직인다는 믿음을 학생들에게 쥐여 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옛날부터 너무 거대한 무언가를 생각해왔었고, 지금도 그랬구나 싶었다. 작은 무언가에서부터 시작해도 되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책임감을, 서로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것은 박물관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감수성은 나와 이웃을, 더 나아가서는 각 세대를, 이웃과 각 세대를 아우르는 지역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궁극적으로는 지구에 대한 감수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미래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고민한다.
과거의 우리를 알아보고 지금과 미래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박물관들은, 특히 지역 박물관들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은 거칠게 진행되고 있는 생각이라 이 부분을 쓰기를 주저했는데, 그래도 써야 저의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아 쓰는 글입니다.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고민인데, 여러 의견들을 주시면 정리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생각이 조금 더 정리되면, 별도의 글로 써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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