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사에 이어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늘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속개한 올해 제43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위는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돈암서원 장경각
이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노력을 폄훼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아가 그 등재를 축하하는 마음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식의 등재는 더는 없어야 한다.
산사와 서원은 연속유산 serial heritage이라, 어느 한 곳이 아니라 뭔가 공통분모를 찾을 만한 것들을 한데 묶어 하나의 유산 목록에 올렸다. 산사는 7군데, 서원은 9군데를 추렸다.
우리는 산사와 서원이라 하면 막연하게 그네들끼리 어느 하나의 공통분모로 수렴하는 줄 알지만, 실은 이들 서원과 사원은 그 등장 조건이 따로국밥을 방불할 정도로 판이하다. 지역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길이 없고, 하다 못해 그 사승이라든가 종파 관계 그 어느 것에서도 공통분모가 없다.
우리가 등재한 것과 같은 논리대로라면, 서구에서는 교회 혹은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한묶음씩 해서 세계유산을 삼을 수도 있고, 회교권 국가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대상으로 그런 방식이 가능하다.
나아가 같은 서원인데, 같은 산사인데 왜 등재대상에서 제외한 곳들은 제외되어야 하는지 그것도 마뜩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심산으로 선정된 것이 산사와 서원이다.
흔히 대원군 때 훼철되지 않은 것을 서원 등재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런 곳으로 현존하는 곳이 더 많은데 왜 제외해야 했는지 설명에 애를 먹었다. 나아가 그렇다면 대원군 이후 중건되거나 새로 생겨난 서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의문 혹은 반론을 겨우 헤쳐 나가기는 했지만, 이런 선별은 필연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등급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흔을 남긴 일로 나는 본다.
16~17세기에 생겨났다 해서 그것이 네오 컨퓨셔니즘을 더 잘 구현하고, 19세기 이래 생겨난 것이라 해서 그렇지 않다는 논리는 하늘에도 없고 땅에 없다. 이런 짓은 그만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서원과 산사 모두 재수를 했다. 이는 그만큼 이들 각각한 유산들을 하나의 가치로 묶어내기 힘들었음을 방증한다. 미끄러지고 나서 그것을 한데 묶는 가치를 찾는다고 혈안이 되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서원과 사원을 누가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제안도, 추진과정도 느닷없어, 그 출발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요망한 기구에서 출범한다. 이 요망한 기구 수장으로 어느 총장 출신 역사학도가 있어, 세계유산의 세자도 모르는 그 사람이 그래, 이런 거 하나 묶으면 명품이 되겠다 싶어 덜커덩 제안한 것이 바로 서원과 사찰이었다.
노강서원. 이건 뺐다. 왜 뺐는지 나는 모른다.
세계유산을 관통하는 인류보편적가치 즉 OUV라는 것은 유형을 고리로 하는 무형가치의 창출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는 말이 있는데, 각기 따로 노는 구슬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그에다가 부여한 핵심가치를 OUV라는 이름으로 도출한 것이다. 이 OUV가 나는 갈수록 논리놀음, 말 만들기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데, 그 전형을 서원과 산사가 보여줬다고 본다.
이에서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어처구니 없는 저런 덜커덩 제안에 문화재청이 얼씨구나 하고 부화뇌동했다는 것이며, 더불어 세계유산으로 비즈니스를 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지식인사회 일부 부류가 야합했다. 이 일부 부류 주축을 이룬 이가 건축학, 개중에서도 고건축학도들이었다.
필암서원
서원과 산사가 세계유산이 된 일은 누구보다 축하하지만, 이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아마추어들이 섣부르게 나서서 백화점 명품 코너, 무슨 백화점 애비뉴얼 만들듯이 이렇게 하면 세계유산이 되겠다고 하루아침 뚝딱 주물하는 일은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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