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단장께서 가야 세계유산 등재 권고에 대한 글을 올려 생각을 조금 써 본다.
여기 몇 차례 썼던 것 같지만, 가야는 왜 망하는 순간까지도 강력한 왕권국가 대신 소국연합체제를 고수했을까?
이것은 시스템의 "후진성" 때문인가 아니면 지향하는 정치체의 형태가 달랐기 때문인가?
유심히 들여다 보면, 한국사에는 역사의 전개에 있어 중국 군현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기나 한서의 조선전을 보면 고조선도 멸망 당시 강력한 왕권 대신 소국 연합체제를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군현이 설치되기 전에는 한반도 남부 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소국들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는 뜻인데-.
한국사에서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정치체는 결국 기원전 2세기 이후 설치된 군현이 모델이 되었고, 이 군현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은 국가들이 바로 삼국,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닐까 한다.
이 삼국으로 상징되는 정치체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넓게 퍼져있는 소국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보는데,
가야는 그 시스템의 연원을 결국 삼국지 동이전의 한전에 묘사된 소국으로 가득찬 연합체에 소급하지 않을 수 없어
강력한 왕권을 지향하는 정치체가 출현하기 전에는 이러한 소국 연합체는 선진적, 후진적인 문제라기 보다 지향하는 방향이 달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그렇다면, 한국사에서 이런 강력한 왕권체제가 성립하지 않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을까?
나는 일본사의 전개가 어떤 면에서는 삼국지 동이전의 한전과 왜인전에 묘사된 사회의 후계로 발전한 면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력한 왕권이 일본에는 출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그 왕권을 어떤 방식으로 성립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의 문제가 한국과 일본이 달랐다는 뜻이 되겠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한전-왜인전에 보이는 소국연합체 성격은 늦게는 일본 근세의 막번체제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가끔 이곳에 언급하겠다.
P.S.1) 이렇게 보면 가야의 연합체제는 후진성의 표식이 아니라 지향하는 정치체의 이질성의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P.S.2) 사실 이런 소국 연합체제는 중국의 경우에도 상주시대에 존재했다는 읍제국가와 닮아 있어 이러한 시스템이 강력한 중앙권력을 전제로 한 왕권으로 이행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로 본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가야는 이런 흐름에 뒤쳐진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지향하다가 실패하고 소멸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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