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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후기왜구의 항해술

by 초야잠필 2023.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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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했듯이 일본에서 중국대륙으로 한반도 해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도항하는 루트는 견당사 때부터 이용되었는데,

네 척 보내면 두 척은 실종 될 정도로 위험한 항로였다. 

하도 실종이 잦다 보니 일본이 신라에게 선불로 금을 주고 만약 견당사가 난파하여 한반도 해안으로 오면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신라에서 그렇게 했는지 안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필자가 아는 한 일본에서 중국 쪽으로의 항해는 송대까지도 일본이 주도하지 못했다. 

당이 송으로 교체된 후에는 이른바 일송日宋 무역이라는 것이 가마쿠라막부와 송나라 사이에 있었는데, 이 무역을 주도한 사람들은 송의 상인들이었던 것으로 안다. 이 무역선이 난파한 것이 신안선이다. 

여말선초의 소위 전기왜구도 주요 활동무대는 한반도 남해안을 따라 황해 일대의 중국 해안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기왜구 때만 해도 이들이 자신있게 오갈 수 있는 곳은 한반도남해안과 중국해안이었던 셈이다. 

이랬던 것이 후기왜구 때가 되면 도항의 루트가 크게 바뀐다. 

일본 관점 지도책이라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됐다.



임진왜란 이전의 16세기 후기왜구는 견당사의 도항로와 거의 비슷한 항로를 따라 장강 이남의 중국해안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16세기에 일본의 항해술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유구를 따라 대만까지 가거나, 아니면 바로 동지나해를 건너 중국 남부지방의 해안을 습격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가 일본의 전국시대다.

전국시대에 항해술이 크게 바뀌어 그 여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조선수군에게 도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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