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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했듯이 일본에서 중국대륙으로 한반도 해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도항하는 루트는 견당사 때부터 이용되었는데,
네 척 보내면 두 척은 실종 될 정도로 위험한 항로였다.
하도 실종이 잦다 보니 일본이 신라에게 선불로 금을 주고 만약 견당사가 난파하여 한반도 해안으로 오면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신라에서 그렇게 했는지 안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필자가 아는 한 일본에서 중국 쪽으로의 항해는 송대까지도 일본이 주도하지 못했다.
당이 송으로 교체된 후에는 이른바 일송日宋 무역이라는 것이 가마쿠라막부와 송나라 사이에 있었는데, 이 무역을 주도한 사람들은 송의 상인들이었던 것으로 안다. 이 무역선이 난파한 것이 신안선이다.
여말선초의 소위 전기왜구도 주요 활동무대는 한반도 남해안을 따라 황해 일대의 중국 해안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기왜구 때만 해도 이들이 자신있게 오갈 수 있는 곳은 한반도남해안과 중국해안이었던 셈이다.
이랬던 것이 후기왜구 때가 되면 도항의 루트가 크게 바뀐다.
임진왜란 이전의 16세기 후기왜구는 견당사의 도항로와 거의 비슷한 항로를 따라 장강 이남의 중국해안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16세기에 일본의 항해술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유구를 따라 대만까지 가거나, 아니면 바로 동지나해를 건너 중국 남부지방의 해안을 습격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가 일본의 전국시대다.
전국시대에 항해술이 크게 바뀌어 그 여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조선수군에게 도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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