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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서기 2000년, 부여는 거대한 공사판이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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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궁남지 인근 야트막한 언덕인 화지산이 연차 발굴을 통해 백제시대 녹록치 않은 흔적을 연이어 쏟아낸다. 

이 화지산, 여차하면 다 날릴 뻔했다. 

자칫하면 전체가 계백결사대공원과 조각공원이 될 뻔 했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단을 소개한다. 


궁남지와 그 위쪽 화지산



2000.07.30 07:00:05

<르포> 파괴일로의 백제 고도 부여


(부여=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폭염이 계속된 28일 공주를 떠나 차로 부여읍에 들어서자 읍내를 남북으로 가르는 대로 중 오른쪽 편 주택가 숲 위로 무엇인가 거대한 철구조물 1개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지 주민에게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아파트 공사장이라고 했다. 공사장 입구로는 건축자재와 공사장 폐기물을 실어나르는 육중한 트럭이 들락거렸다.


부소산성 정면 옛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들러 이곳에서만 9년을 일한 최맹식 소장에게 아파트에 대한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곳에 5~10층짜리 고층아파트가 여러 동 들어설 예정"이라면서 "그래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가지정 문화재가 지천에 깔려 있는 부여 읍내에 저런 고층 아파트가 어떻게 들어설 수 있느냐고 묻자 최 소장은 이번달에 시행에 들어간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같은 법령이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런지 모르나 그럴 재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염창리고분군



새로운 법령은 문화재 주변 500m 이내 건축행위를 규제토록 하고 있다.


그 이전 문화재보호법에는 문화재 주변 100m 이내 건축 행위를 엄격히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행정규제조치 완화라는 철퇴를 맞아 이 조항은 폐지되고 말았다.


이 폐지된 조항이 1년반 남짓만에 문화재 주변 500m 이내 건축 행위 규제라는 훨씬 강력한 무기로 부활했다.


새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지정 문화재인 부소산성과 가까운 문제의 쌍북리 고층아파트 건축은 막을 수 있겠으나 이 아파트에 대한 건축허가는 이미 지난 97년 12월에 났다.


그런데 문화재 주변 건축행위를 둘러싼 규제와 철폐가 되풀이되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이 규제 조항이 폐지됐다가 부활한 지난해 4월 이후 올해 7월 1일까지 1년반 남짓 동안 문화재는 개발에 무방비였다는 점이다.


부여군이 계백 오천결사대 충혼탑과 조각공원을 세우겠다며 남쪽 절반을 망가뜨린 화지산이 그 대표적 희생자다. 왜냐하면 99년 4월 이전이었거나 올해 7월 이후라면 국가사적인 궁남지와 바로 인접한 이곳은 함부로 파헤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 날아갈뻔한 화지산



그러나 화지산은 문화재 주변에 대한 보호막이 사라진 기간에 파괴되고 말았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궁남지를 코앞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이곳을 파괴한 부여군이 뒤늦은 발굴결과 백제 유적과 유물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보이고 있는 반응이다. 이왕 파괴되고 발굴된 이상 최소 규모나마 원래 사업을 하겠다고 야단이다.


백제유적을 파괴하고 들어선 충혼탑에서 계백장군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2000년 현재 부여군 전체 인구는 9만8천명, 이 중에서도 부소산성을 비롯해 서기 538년 공주에서 천도 이후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함락되기까지 123년 동안 백제 수도 중심지였던 부여읍은 인구 2만8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는 보잘 것 없지만 부여읍은 경주, 공주, 서울과 함께 몇개 되지 않는 한국의 당당한 고도이며 여기에 어울리게 부소산성이며 궁남지며 정림사지며, 낙화암이며, 화지산이며 하는 백제 유적과 유물이 득실되는 한국 문화의 보고이다. 


더구나 다른 고도가 개발로 전신을 얻어맞아 회복 불능이라 할 만큼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달리 부여는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한 유일한 고도로 평가됐다.


다 날아갈 뻔한 화지산



하지만 이 귀중한 고도가 문화재 주변 건축규제라는 고삐가 완전히 풀려있던 1년반 남짓한 기간에 개발이라는 괴물의 덫에 걸려 곳곳에 시퍼런 멍이 들고 있다.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읍내 이곳 저곳에서 마주치는 공사현장과 발굴 현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체로 파괴와 문화재 발굴 건수는 정비례한다. 현재 발굴이 진행중인 곳은 국가사적인 궁남지와 맞닿은 화지산과 논산-부여간 4차선 국도공사가 진행 중인 염창리 일대 1㎞ 구간, 100만평이 넘는 백제역사재현단지 등 모두 3곳이다. 


인구 3만도 되지 않는 부여읍에서 동시에 3곳이나 발굴이 벌어지고 있다.


고층아파트나 사적 지정이 유력한 화지산보다 더 난감한 곳이 실은 문화재위원회가 스스로 자기 코를 찌르고 만 염창리 고분군이다.


화지산 백제유적



도로가 지나갈 이 일대 산과 능선은 이미 수목이 잘리고 땅 꺼풀이 다 벗겨져 누른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을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요즘 난개발로 시끄럽다는 경기 용인을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볕이 잘 드는 남쪽 능선을 따라 300기나 되는 백제 고분군이 발견됐다. 이미 이중 일부 구간에 대해 공주박물관이 발굴을 벌인 결과 124기나 되는 사비시대 전형적인 백제 고분형식인 이른바 횡혈식 석실고분이 확인됐다.


공사구간 능선에 올라 고분군을 내려다 본 느낌은 과연 남한에서 이런 대규모 공동묘지가 있을까 할 정도로 이곳은 남한 최대의 고분 야외박물관이었다. 


아무리 국사 책에서 사비시대 백제의 전형적인 고분형태가 횡혈식석실분이라 외웠어도 이곳을 한번 찾아 직접 보는 것만 못하리라.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말이 바로 이 염창리 고분군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따라서 이곳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 또한 높다.


그러나 공사시행처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이미 염창리 구간만을 제외하고 다른 구간 공사가 대강 마무리된 만큼 보존은 절대 안된다고 극력 반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가 일단 발굴을 해서 유적이 나오면 부여 백제역사재현단지 안 한국전통문화학교나 인근 능산리고분군으로 이전한다고 했고 이를 위해 사전발굴허가까지 내준 지금에서 보존 운운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염창리고분군을 보존하는 쪽에서는 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든지, 터널을 뚫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회로를 돌릴 곳이 없을 뿐더러 터널은 능선과 산 정산이 섞여있는 공사구간 특성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 관계자 말처럼 최대 백제고분군으로 밝혀진 염창리 일대에 대한 사전발굴을 허가해준 문화재위원회가 가장 큰 잘못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발굴은 곧 파괴라는 고고학의 가장 기본되는 상식을 모를 리 없는 문화재위원회는 이미 공사 시행 단계 이전에 이곳이 백제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발굴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스스로 코가 낀 것이다.


하지만 도로는 나중에 만들 수도 있으나 유적은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복구 불가능이다. 일부 전문가가 이들 고분군은 이전하면 되고 300기 중 정말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수십기 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망발이다.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그것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고 또한 원래 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으며, 더욱이 아주 모양새가 좋은 고급 고분 몇 개만 보존하면 된다는 발상은 백제 역사를 왕족을 포함한 지배층 일부만의 역사로 보고자 하는 이른바 왕조사관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을 둘러본 한 문화재위원은 "염창리고분군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함부로 때려 부술 것이 아니요, 부여사람들만의 것만도 아니며 우리 국민 전체의 것이며 10년, 20년, 100년, 1천년 후 우리 후손들의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taeshik@yonhapnews.net 

(끝)

                       

이 르포 기사가 미친 영향은 자못 컸는지, 그 다음달인 2008년 8월 3일에는 염창리고분군 보존이 결정됐으며, 다시 그 다음달에는 화지산 유적이 보존됐다. 자칫하면 화지산에서 우리는 계백오천결사대충혼탑을 볼 뻔했다. 


2000.08.03 10:42:34

부여 염창리 백제고분군 보존


(부여=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사비시대(AD 538~660) 백제가 조성한 300기에 달하는 부여읍 염창리 고분군이 보존되게 됐다.


이에 따라 이곳을 지나기로 돼 있는 부여-논산간 4차선 국도는 고분군이 밀집한 산 아래 터널로 지나거나 우회해야 한다.


문화재위원회 관계자는 3일 염창리 고분군은 보존가치가 다른 어떤 곳보다 높아 사적 지정 등을 통해 보존키로 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창리 고분군은 해발 100m 남짓한 이 일대 야산 중에서도 햇볕이 잘 드는 남쪽 능선을 따라 300기가량이 조성돼 있음이 90년대 중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지표조사와 최근 도로공사를 앞둔 공주박물관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됐다.


문화재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최근 들어 급속한 개발과 이에따른 문화유적  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백제 고도 부여를 보존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염창리 고분군과 더불어 최근 부여군이 계백 5천결사대 충혼탑 및 조각공원조성을 위해 파괴한 궁남지 인근 화지산 일대도 사적 지정을 통한 보존 쪽으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taeshik@yonhapnews.net

(끝)


2000.09.08 09:52:47

부여 화지산 보존 결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부여군이 계백 오천결사대 충혼탑을 세우겠다며 사전 매장문화재 발굴 없이 무단 파괴한 부여 화지산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예고됨으로써 보존되게 됐다.


이번 조치는 부여-논산간 국도확장공사 구간에 들어있는 염창리 백제고분군 보존과 함께 최근 들어 급속한 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백제 고도 부여 일대의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부여 시가지 남쪽 궁남지(사적 135호) 바로 동쪽에 붙어 있는 화지산 일원을 사적으로 지정예고했다고 8일 말했다. 


화지산 유적 백제시대 목조유물



해발 10~48m에 지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인 이곳에서는 지난 86년 충남대박물관 발굴결과 건물터와 수많은 기와가 발굴돼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됐으나 최근 부여군이 오천결사대 충혼탑을 짓겠다며 절반 가량을 무단파괴했다.


하지만 현장을 발견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공사를  중단시키고 파괴현장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백제시대 건물터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확인돼 보존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됐었다.


문화재위원회는 화지산 일대 사적 지정예고와 함께 부여군이 추진하고 있는 오천결사대 충혼탑은 규모를 축소해 화지산 남측 매립지역에다 허가를 해주는 방안을 검토하되 우선 유적확인조사를 한 다음 최종 결정키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와함께 사적 제341호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 주변 보호를 위해 현재 2만381㎡인 보호구역을 2배가량 늘린 5만7천862㎡로 대폭 확대했으며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은 지정구역을 현실에 맞게 조정키로 했다.

taeshik@yonhapnews.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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