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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1박4일 키르기스스탄 출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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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만난 키르기스인



*** 2009.09.21 19:33:46 지금은 사라진 내 과거 블로그 글이다. 이 시점을 염두에 두어야 아래 문서를 해독한다. 


1박4일. 나는 이런 표현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불행이라면 그 체험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는 고구려 고분벽화 해외 순회전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행사가 개막하기는 지난 15일. 

장소는 이곳 수도 비슈케크이며, 더욱 정확히는 그곳 Fineart Museum이라는 곳이었다. 그 취재를 위해 한국에서는 나와 kbs 취재진 3명의 도합 4명이 현지로 갔다.(취재진만 말함) 


키르기스 비슈케크 마나스국제공항



비슈케크까지 직항로는 아직 개설되지 않은 까닭에 대체로 키르기스스탄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나,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가서 갈아탄다고 하거니와, 우리는 이 중에서도 알마티 코스를 따랐다.  


카자흐스탄 국적 아스타나 항공에 몸을 실어 인천을 출발한 때는 월요일인 14일 오후 5시. 비행기는 대략 7시간 만에 알마티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탄은 시차가 3시간이라, 한국시간 자정, 현지시간 저녁 9시 무렵에 도착한 셈이다. 




이곳에서 비슈케크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우리는 4시간 이상을 죽을 쳐야 했다. 내가 이때 일정을 자세히 기록해 두지는 않았지만, 주요 일정마다 촬영한 사진 정보에 내장된 시간을 보니, 비슈케크행 비행기에 오른 시각이 15일 오전 4시56분으로 찍혀 나온다. 이에서 3시간을 뺀 현지시간 오전 2시 무렵에 환승을 한 셈이다.


이 알마티발 비슈케크행 비행기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프로펠러기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규모는 아주 적어 적으면 50명, 많아봐야 100명 이내가 탑승 용량인 듯했다. 비슈케크까지 비행시간은 45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비슈케크 공항을 빠져 나온 직후 촬영한 공항사진을 보니, 촬영시간이 오전 6시26분으로 내장돼 있다. 이에서 3시간을 뺀 오전 3시30분 정도에 우리는 비슈케크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마친 셈이 된다. 30분가량 달려 비슈케크 시내 호텔에 투숙하니, 이래저런 수속을 밟고 방에다가 짐을 푸니 이미 5시가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 개막



이렇게 도착한 다음, 오전 잠깐 피곤함을 그런 대로 풀고 15일 오전 11시부터 정해진 행사를 따르기로 했다. 이날 오후는 전시회 개막에 따른 각종 식전, 식후 행사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첫날을 보낸 다음, 그 이튿날인 16일 하루는 키르기스스탄 역사문화 유적을 답사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동북아재단측이 제시한 답사 계획을 보니, ‘국립역사박물관 및 암각화 유적지’라고 되어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이라고 하면, 이식콜 호수를 빼놓을 수 없고, 나아가 이 인근에 저 유명한 암각화 유적지가 있다 하므로, 16일에는 이곳을 방문할 셈이었던 것이다.  


이식홀 호수. 거대한 내륙바다



이것이 실상 키르기스탄의 마지막 날이다. 왜 그런고 하니, 16일 저녁에는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고, 잠깐 쉬었다가 비슈케크 공항으로 나가 17일 새벽 4시에 알마티로 출발하는 프로펠러기를 다시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우리의 코스는 이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은 범위를 밟았다.


이식홀 호수 뒤편으로 설산인 천산산맥이 펼쳐진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2시간 전까지는 비행장으로 나가야 하니, 대사관 주최 만찬을 끝내고 무슨 잠을 제대로 붙일 수 있겠는가? 


귀국길이 다소 위안이라면, 알마티 공항에서 환승 대기 시간이 2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며, 나아가 편서풍을 등지는 까닭에 갈 때는 7시간 가량 걸린 항공시간이 30분 내지는 1시간 정도가 줄었다는 사실이다.


만년설 뒤덮힌 천산산맥



그래도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7일 오후 3시 30분 정도였다. 갈 때 벌어놓은 3시간이 올 때는 6시간이 되어 곱빼기로 빨리 다음날이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줄로 알았던 1박4일을 나는 체험했다.


촐폰아타 암각화군



그 피곤함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때가 아니면 내 언제 키르기스탄, 혹은 중앙아시아에 갈 수 있으리오”라는 집념과, 다시 내 생애 새로운 문물을 접했다는 기쁨으로 그 피곤을 잊고저 한다. 


키르기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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