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박제가가 스스로 이에 대한 글을 남긴 바는 없지만
주변 정황을 보면 박제가가 가지고 있었을 한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벌족 출신으로
5대 문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5대 진사만 해도 목이 부러질 정도로 힘이 들어간다)
그 아버지는 박제가가 유일한 혈육 아들이었음에도
그는 적자가 아니라 서자였다.
이렇게 서자가 되어버리면 허통을 허락하지 않는 한은
당연히 대대로 서얼금고가 되어버리니,
똑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아버지가 그의 재주를 아껴 최고의 교육까지 시켜 놓으니
그가 품었을 한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렇게 이례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다, 좋은 백업을 받았다 싶으면
그 주변의 정황을 알아보면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신사임당-.
이 집안은 아들이 없이 딸만 다섯인 집안이었다.
그 아버지가 신사임당에게 왜 그렇게 일반적인 반가의 여성들이 받는 수준 이상의 교육을 했던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조선시대 서자의 한이 어찌 박제가 하나 뿐이었으랴.
나라의 절반이 서자라고 한탄한 영조의 말 그대로 믿자면,
조선후기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이 노비,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의 또 절반은 서자였던 셈이다.
그들의 한만 모여도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한이 모여서 망한 것이다.
반응형
'족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자 박제가의 한 (3) (0) | 2026.05.12 |
|---|---|
| 서자 박제가의 한(2) 적자가 없는 아버지 (0) | 2026.05.12 |
| 서자 박제가의 한 (1) 문과 5대를 연속 배출한 최고의 명문가 (0) | 2026.05.12 |
| 한국 고도성장의 시작은 영조대 이후 (0) | 2026.05.12 |
| 조선시대 적자와 서자의 비율은 1 대 1 (0) | 2026.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