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 북방 사민.
남쪽에서 사람들을 데려다 새로운 곳이 이주시켰다.
흔히 범죄자를 이주시켰다고 알려진 북방사민-.
그렇다면 우리나라 북쪽 지역 사람들은 죄다 범죄자 후손이라는 말인가?
실록에 몇 줄 서 있는 것만 보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저렇게 넓은 지역에 사람을 채우는데 어떻게 범죄자로만 그 땅을 채우겠는가.
조선시대에 국정의 필요에 의해 주민을 강제 차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군역-.
알다시피 조선시대 호적은 또 다른 말로 한다면 군역 장부이다.
물론 군안은 따로 있겠지만 호적에는 군안을 만들 기초적 정보가 있는 덕분이다.
아무리 조선이 막간다 해도 그냥 호적 보고 너, 너, 너 이런식으로 부담을 지우지는 않는다.
물론 대책없이 뽑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나가리 되므로,
사람을 차출할 때는 권력과 백성들 사이에 치열한 머리 싸움이 따랐다.
백골징포니 황구첨정이니 하는 것은 모두 권력의 일방적 횡포로 보이지만,
조선시대 호적이라는 건 정부 혹은 향촌 권력의 일방적 관철이 아니라
나름 여러 세력의 힘싸움이 만든 최종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북방사민은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분명히 많은 사람이 북쪽으로 이주한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모호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조금 써 보기로 한다.
물론 필자라고 해서 없는 문헌을 들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상당 부분 필자의 추정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
물론 추정이라고 하지만 생판 없는 사실을 공상으로 만들어 이야기 할 것은 아니다.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이 목도한 조선 초기의 북방 강제 사민徙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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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입거인을 만나다〔路逢入居人〕 성현成俔(1439 ~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14권 시詩 못 보았는가 영호남은 사람 넘쳐나 / 君不見湖嶺人稠車接轂 천만 채 집 즐비하게 들어선 모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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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신증 단천군 기술을 보면 삼척에서 대거 징발했다.
뱃길로 갔으리라.
한국사 열쇄를 쥔 함경북도 단천
한국사 열쇄를 쥔 함경북도 단천
단천은 이 지도에서 보다시피 동해안을 걸치는 북한 동쪽 해안선 딱 중간 위치를 점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행정구역으로는 함경남도에 속한다. 단천을 端川이라 쓰는 내력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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