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에 태어나 1973년 4월 8일에 죽었다. 백수가 흔치 않게 된 요즘이야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 의료 사정을 고려할 때 92년 성상이라는 기록적인 장수를 누렸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정력이 더욱 용솟음쳤다는 사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제낀 그의 마지막 자식은 팔로마 피카소로 알고 있는데 1949년생이라, 68세에 낳은 딸이다.
피카소보다 대략 천살 많은 서신일徐神逸이라는 사람은 피카소를 무색케 한다. 친구들은 다 송장이 된 여든살에 으랏차차 해서 아들을 낳았고, 더구나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과 다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모조리 재상을 지냈으니 이렇게 후손 복이 많은 사람 있을까 싶다.
그의 아들이 내의령內議令까지 지낸 서필徐弼이요, 서필의 아들이 이른바 강동육주로 유명한 태보太保 겸 내사령內史令을 역임한 서희徐熙이며, 서희의 아들이 삼중대광 내사령三重大匡內史令으로 죽은 서눌徐訥이다.
내사령內史令은 982년, 성종 원년에 내의령內議令이 바뀐 이름이라, 3대가 모조리 고려 최고 행정관청 최고 장관을 역임한 것이다.
이들 3대 직접 뿌리가 되는 서신일徐神逸은 아마도 신라시대 말기에 활동하다 고려 왕조가 개창할 무렵에 세상을 하직한 듯한데, 그가 늘그막에 아들 서일을 둔 사연이 고려사 열전이 정리한 서희徐熙·서눌徐訥 부자 일대기 말미에 첨부되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애초에 서필徐弼의 아버지 서신일徐神逸은 시골에 살았는데, 사슴이 도망하여 〈그에게〉 의탁하므로 서신일이 화살을 뽑고 숨겨주었더니, 사냥꾼이 추격해 왔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갔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하며 말하기를 “사슴은 바로 내 아들입니다. 그대 덕분에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고관대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서신일은 나이 80에 서필을 낳았고, 서필·서희·서눌이 과연 이어서 재상이 되었다.
이 일화가 주는 교훈은 딱 하나다.
늙었다 절망 말고 부지런히 정력 발휘하라!
그러면 후손이 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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