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중국은 당唐 제국이 결딴난 상황이라, 절도사 시대가 개막하면서 막부정권 문을 다시금 열었다. 다시금이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는 언제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까닭이며, 이에서 후삼국시대 개막과 그에 따른 고려왕조로의 통일 역시 이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까닭이다.
절도사에 비견하는 중앙 정부 파견 관리가 없던 신라의 경우, 도독이니 뭐니 해서 무던히도 봉건제후화하는 지방 거점 권력을 억누르고자 했고, 그것이 장기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겉만 그리보였을 뿐, 속으로는 발호하는 권벌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도독들이 사라진 자리에 숨을 죽이고 있던 지방권력들이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서기 시작했으니, 깡패 두목들까지 설치는 막부시대가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개막했다.
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라, 더 정확히는 그 막부들의 연합이었다. 정중부에 의한 무신정권 탄생을 흔히들 막부정권 개막이라 보지만 천만에, 고려는 막부에서 탄생해 막부로 망했다.
하지만 천하는 말 위에서 쟁취하나 다스림을 위해서는 말을 내려와야 하는 법. 체제가 서서히 안정화하면서 마상馬上정치가 끝나고 마하馬下정치가 개막했다.
이 마하 정치 핵심은 안정적이며 체계적인 관료 공급 장치를 절대 기반으로 삼거니와, 고려 역시 광종시대가 개막하면서 과거제를 도입함으로써 그 길을 열었다.
문제는 이 과거에서 무과武科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장군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배출되었을까? 이 점이 수상쩍기 짝이 없다.
문과만 있는 관료제 사회, 하지만 끊임없은 내외부 적과 싸워야 했으며, 그런 쟁투가 끊임없이 배출하는 무신들은 도대체 누가 어찌 만들었을까? 이 의문은 고려사가 봉착한 심대한 미스터리다.
문관들이 독점하는 관료제는 그에서 배제되는 무신들의 반발을 끊임없이 증폭했으니, 애초 출발이 무신들의 막부정권이었던 기억을 저들 무관은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때가 왔다 판단했을 때는 과감히 쿠데타를 감행해 권력을 잡았다.
목종-현종 교체기 강조와 그의 일당이 벌인 행동은 고려가 다시금 막부로 가는 신호탄이었다. 강조는 서북면 군사들을 이끌고 개경을 접수하고는 권력을 찬탈했다.
그의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지만, 더구나 비참하고도 어이없게 그의 시대는 곧바로 막을 내리고 말지마는, 그가 부활한 막부정권은 마침내 다시금 숨을 고르다가 1세기가 지나자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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