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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석촌동 공동묘지에서 튀어나온 집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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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성백제박물관이 속개한 서울 석촌동고분군 발굴조사에서 수습한 백제토기들이다. 


여타 한성시대 백제토기들에 견주어 딱 봐도 연식이 좀 오래되신 분들이다 하는 느낌을 준다. 


이 토기들을 보는 순간, 나는 얼추 3세기 어간 혹은 그보다 빠르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조사단 누구한테 물어보니, 시기를 단안하지 않은 채 "3세기 말 내지 4세기 정도로 보는 듯하다"고만 한다. 


할 수 없이, 저 사진을 보내고선 풍납토성을 다년간 발굴한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한테 물었더니 


그 역시 단안은 하지 아니하고 저 중에서도 편평한 뚜껑을 지칭해서는 보통 3세기 중반 이후로 본다면서, 다만, 저 중에서 아가리가 고추선 직구호를 그 자신은 2세기대 말이면 충분히 출현한다고 본다 한다. 따라서 저런 뚜껑이 직구호 같은 걸 덮었다고 가정하면 기존 편년보다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암튼 이런저런 얘기 종합하면 저런 토기들은 현재의 고고학 연구성과에 의하건대 서기 200~300년대 무렵에 속한다고 하면 될 것이다. 


한데 저들 토기가 출토한 곳이 뜻밖에도 '1호 주거지'라 했다. 


석촌동고분군은 한성백제시대 왕릉을 비롯한 최고지배계층 무덤으로 알려졌거니와, 그런 공동묘지에 느닷없는 백제시대 주거지라니? 


좀 이상하지 아니한가?


그런 의문은 저 주거지가 어떤 이유로 폐기되고서 그 위에 무덤이 들어섰다는 점에서 풀 수 있으리라 본다. 조사단은 저 집이 화재로 훼멸된 것으로 본다. 이래저래 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화층 양상으로 볼 적에 주거지가 아래, 무덤이 그 위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두 가지 건축물의 선후 관계는 분명해 진다. 


석촌동고분군은 말할 것도 없이 공동묘지다. 이런 공동묘지가 조성되기 전에 누군가 이곳을 터잡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으니, 의의가 다대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주거지에서 출토한 토기들 연대가 대략 잡히면, 이곳에 무덤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시점도 얼추 짐작이 가능하다. 


저런 주거지가 존속기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기껏해야 몇십년이다. 따라서 저 집이 들어선 시점이 곧 무덤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런 현상을 석촌동고분군 전체로 확대할 수는 없다. 저 주거지 달랑 하나를 일반화해서, 그래 석촌동에 고분이 조성되기 시작한 시점이 그때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인근에 무덤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 집이 들어섰을 수도 있고, 나아가 저 집터가 예컨대 묘지기 집이었다고 하면 어칼 것인가?




주거지 노출 장면이다. 보다시피, 무덤보다 아래층임이 뚜렷하다. 


이곳에서 집터를 볼 줄은 내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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