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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새끼 안은 호랑이가 보호하는 고양 성녕대군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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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성녕대군誠寧大君 이종李褈(1405~1418)이 잠든 곳이다. 

성녕誠寧은 그의 형 孝寧을 흔히 효령이라 읽기도 하거니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성령대군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쌍분雙墳 합장合葬이 보통인 이 시대에 덜렁 봉분封墳이 하나이니

봉분 하나에 부부가 묻혔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독무덤이다.

조선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사이에서 난 적통 왕자로는 넷째인 그는 내내 시름시름 앓다 14살, 만 13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권력층 묘제墓制는 고려시대 양식을 계승해 묘는 평면 방형方形이다.

봉분 사방에다 석호石虎 혹은 석사자石獅子와 석양石羊  한쌍을 배치하고 앞에는 상석床石과 장명등長明燈을 두고 좌우로 문인석文人石을 세웠다.


후사後嗣 없이 세상을 떠난 까닭에 그의 형 충녕대군忠寧大君 이도李祹, 곧 훗날의 세종世宗 셋째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입사立嗣했지만, 안평이 계유정난으로 패몰敗沒하자 세종과 성녕대군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6남 원천군原川君 이의李宜로 후사를 잇게 했다.  



성령대군 무덤 앞 이 쌍분이 원천군  부부묘라, 애초엔 서울 신내동에 있다가 1991년 이곳으로 천장遷葬했다 한다.

성령대군 묘역 사당은 대자사大慈祀라 했으니, 이는 현재 이 일대 지명 대자동大慈洞 뿌리가 된다.


성령대군 봉분과 석물은 애초의 그것에서 크게 변동이 없다 짐작하거니와 봉분 주변 석물 중 이 석호 혹은 석사자가 특이하다.

사자보단 호랑이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데 그 모양새가 특이해 목젖 부분이 울퉁하고 배불뚝이라

언뜻 갑상선 계통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데 살피면 새끼를 안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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