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언젠가 연려실기술 서문이 정말 명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던 바
이 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 읽어 보면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글의 하나다.
작자의 진솔한 감정이 들어있는 명문이니 더 그럴 것이다.
나도 연려실 선생처럼 늙어가는데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자탄만 늘어날 뿐이다.
번역을 올린다.
내가 열세 살 때에 선군先君을 모시고 자면서 꿈을 꾸었다.
꿈에 임금이 거둥하시는 모습을 여러 아이와 길가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임금께서 갑자기 연輦을 머물게 하시고, 특별히 나를 불러 앞에 오라 하시더니,
“시를 지을 줄 아느냐.” 하고 물으셨다.
“지을 줄 압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임금께서, “지어 올리라.”고 하셨다.
내가 “운韻을 내어 주소서.” 하였더니, 임금께서 친히, “사斜ㆍ과過ㆍ화花 석 자를 넣어 지으라.” 하셨다.
잠깐 동안 시를 생각하는데, 임금께서 “시가 되었느냐.” 물으셨다.
대답하기를, “시를 겨우 얽기는 했습니다만 그 중에 두 자가 미정이어서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더니,
임금께서 “말하여 보라.” 하셨다.
곧 아뢰기를, “‘비가 맑은 티끌에 뿌리는데 연輦 길이 비꼈으니, 도성 사람들이 육룡六龍이 지나간다고 말하네.
초야에 있는 미천한 신하가 오히려 붓을 잡았으니, □□학사의 꽃을 부러워하지 아니하네.’
[雨泊淸塵輦路斜 都人傳說六龍過 微臣草野猶簪筆 不羨□□學士花]
이렇게 시를 지었는데, 끝 구의 학사 위에 두 자를 놓지 못했나이다.” 아룄더니,
임금께서, “네가 놓지 못한 두 자는 ‘배란陪鑾’이란 두 자를 넣었으면 좋을 듯하니,
의당 ‘임금 모시는 학사의 꽃이 부럽지 않네.’가 될 것 같다.” 하셨다.
내가 놀라 깨어 선군에게 고하였더니, 선군께서, “이것은 길몽이다.” 하셨고
내 생각에도 역시 훗날 어전에서 붓을 쥘 징조인가 했는데,
그 후 내가 궁하게 숨어 살게 된 뒤로는 전연 잊어 버렸다.
요즘에 와서 문득 생각하니,
초야잠필草野簪筆이란 글귀가 늙어서 궁하게 살면서 야사를 편집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어릴 적에 꿈으로 나타난 것인 듯하니,
실로 우연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운명으로 미리 정해져서 그런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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