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은 사도전승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제관계는 당연히 학맥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사제관계가 반드시 성립되어야 그 진수를 체득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도통은 이미 끊어졌고 우리가 그 도통을 이었다고 자임한 북송의 유학자들은
어떻게 성리학을 발명했겠는가?
여말선초 유학자들은 성리학에 관련된 자료를 들고 들어온 것이지
성리학자를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이로부터 제자로 인준받아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퇴계, 율곡, 남명, 화담 모두 마찬가지다.
스승은 모셨겠지만 이들이 성리학 진수를 체득한 것은 스스로 깨달음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철학의 텍스트,
그리고 이를 반복 독서 사유하는 부지런함과 치밀함이 되겠다.
그러면 이것이 전부인가?
그렇지 않다.
성리철학은 매우 치밀하게 만들어진 근세 이전 최고급 수준의 사유체계로서
그 전모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가?
바로 서로 묻고 답한다.
주자어류에 남아 있는 주자와 제자의 문답이라던가,
아니면 퇴계와 고봉의 문답,
이런 것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글을 읽다가 의문이 생길 때 이를 묻고 답하면서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 성리학과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1561~1619)가 나온다.
조선의 성리학이 일본 성리학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조선 성리학이 일본에 전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은 상고시기 백제에서 왕인이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주었다는 식의 기록과는 다른 것이다.
강항이 일본 성리학의 개조 후지와라 세이카를 처음 만날 때
그는 이미 성리학의 대강을 알고 있었다.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지와라 세이카, 그리고 이승훈 (2) (0) | 2025.05.12 |
---|---|
성리학을 모태로 탄생한 한국 기독교 (0) | 2025.05.12 |
예학 그리고 교회 만들기 (1) | 2025.05.12 |
어째서 성리학자가 천주교도가 되었는가라는 문제 (0) | 2025.05.12 |
맹자를 읽고 도통을 만난 성리학자들-성경근본주의와 유사점 (0) | 2025.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