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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소위 역사의 발전단계에 대하여

by 초야잠필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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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필자가 학생시절에는 읽을 만한 책이 소위 사회과학서적,

지금 생각해보면 좌파 서적 밖에 없었다. 
 
각설하고, 

당시 풍미한 이야기 중에는 "역사의 발전단계"에 대한 주제가 많았다. 

막시즘 영향이 짙지만 반드시 그 논리대로 따라간 것은 아니고 

나름 동아시아적 측면에서 한중일 사례도 다루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대부분 일본좌파서적 번안서였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책에 나온 소위 역사의 발전단계 어쩌고는

누구도 제대로 된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도를 넘어서

이걸 가지고 한국사에는

아시아적생산구조니, 
동양적 노예제니, 
봉건제 결여론이니, 

해서 한국사를 그 논리에 짜 맞추려는 시도가 부단히 있었다는 점이다. 

그건 좋다. 

문제는 이렇게 논쟁 아닌 논쟁을 하고 하다가,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된 후에는 정작 그 논쟁을 하던 당사자들은

또 다른 유행을 찾아 이번에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데 
그거라고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필자가 철 들고 봐온 우리나라 80년대 이후 소위 논쟁사라는 것은 전부 비슷한 모양으로 

근본적으로 한국 학계 제일의 문제점은 그 불임성에 있다. 

논쟁을 벌였으면 결판을 내야지

제대로 끝도 내지 않고 결론도 없이 마무리 대충 짓고는 (마무리 대충 짓는다고 한 것은 크게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는 대부분 유야무야 논쟁이고 나발이고 liquify되어 사라졌다는 말이 옳다) 

반성도 없이 다음 유행이 되는 주제로 넘어가 지난 번 하고 똑같은 소리를 버전만 바꾸어 반복하니 

발전이 있을 턱이 없다. 

이러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지금도 한국사에서 가야라는 정치체에 대해 

중앙집권적 왕권의 수립에 실패한 소국들이라는 결론을 짓는데 대해서는 

소국연합체는 반드시 전제왕국으로 가야지만 역사의 발전이 성취된 것이라는 믿음이 반영된 결과로 보아, 

과연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아마도 역사의 발전단계는 단일한 하나의 길만 있다는 80년대 이래의 

역사 발전론이 알게 모르게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질문하노니 그리스 소국들이 마케도니아에 합병되어 끝났다고 해도, 

이들이 마케도니아보다 열등한 존재였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중앙집권국가와 소국연합체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소국을 죽어도 유지하고자 한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야인들이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들이 중앙집권도 못하고 사라졌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소국을 유지해야 하는 모종의 신념이 있었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폴리스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중앙집권국가를 왜 달성하지 못했는가를 묻기에 앞서, 

소국의 유지에 그들이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 본다. 


도시국가 연맹 그리스는 중앙집권적 전제국가 마케도니아에 병합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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