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겪은 양반 오희문이 기록한 16세기 조선
송고시간 2020-10-19 20:46
임동근 기자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
아침 휴대폰이 울리면서 찍히는 이름 S모. 우짠 일이지?
"단장님!"
"오잉? 우짠 일이고? 요새는 어데서 일하노?"
"저 진주에 있자나요."
한데 목소리가 영 안 좋다. 뭔가 얻어터질 듯한 기운이 쏴 날아든다.
"단장님! 우리 쇄미록瑣尾錄 왜 기사 안 써 주세요?"
"잉? 나 문화부장 아냐. 나 한류단장이야."
"그래도 담당기자한테 말씀해주실 순 있자나요."
"요새 그랬다간 갑질로 걸려 ㅋㅋㅋㅋ. 근데 이노무시키가 이 중요한 쇄미록 턱별전 기사도 안 썼다 이거지???? 나뿐 놈이네. 최 관장 마지막 작품인데 잘 써야지 ㅋㅋㅋㅋ"
뭔가 보도자료 전달 이런 데서 착오가 빚어졌나 보다. 좀 기다리니 첨부한 저 기사가 나갔다.
이번 전시는 기자 출신 최영창 관장의 국립박물관 마지막 전시다. 다음달 초 퇴직한다. 국립지방박물관 중에서 인지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던 진주박물관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최영창을 통해 진주박물관은 비로소 존재감을 각인했다. 그를 기념하고자 나는 조만간 진주를 갈 것이다.
덧붙이건대 이 《쇄미록》을 읽다 보면 사람 환장한다. 저자 오희문은 임금이, 국가가, 사직이 어찌되건 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의 안위와 처자식만 걱정한다. 그에게 전쟁은 公이 아니며 철저히 私일 뿐이다.
공자 이래 유교는 그 기나긴 기간 강상윤리를 강요하며, 임금과 아버지는 동일체임을 주입했지만, 忠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孝만 넘실댐을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쇄미록》은 그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자세는 조선후기 식민지시대를 살다가며 63년치 일기를 남긴 울산지역 잔반 심원근의 그것과 일맥으로 상통한다.
보통 임진왜란 당시를 증언하는 기록을 용사일기龍蛇日記라 한다. 전란이 시작한 壬辰(임진)년과 이듬해인 1593년 癸巳(계사)년이 십이지 동물로는 각각 용龍과 뱀[蛇]에 해당하는 까닭에 이리 부른다.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가 용사일기 대표다.
오희문 임란 일기 제목을 쇄미瑣尾라 한 뿌리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풍邶風이 저록著錄한 모구旄丘라는 시에 보이는 “瑣兮尾兮 遊離之子”라는 구절에서 편취한 것으로 결국 피란기라는 뜻이다. 전 7책이다.
아래는 국립진주박물관 보도자료 전문이다. 그대로 전재한다.
코로나19의 일상과 같으면서도 달랐던 임진왜란의 나날들
특별전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영상, 그림, 숫자, 글로 풀어낸 16세기 오희문의 일상 속으로
일시: 2020.10.13.(화) ~ 2021.3.7.(일)
장소: 국립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
대상: 쇄미록(보물 제1096호)’ 등 52점(보물 4건 18점 포함)
내용: 쇄미록의 역사 및 내용
- 16세기 임진왜란을 겪은 한양 양반 오희문의 기록과 일상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은 10월 13일(화) 특별전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를 개최한다.
조선 중기의 양반 지식인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은 임진왜란(1592~1598)을 몸소 겪으며 9년 3개월(1591.11.27.~1601.2.27.) 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기록하였다.
그 일기, 쇄미록을 집중 조명한 이번 특별전은 7년 전쟁의 참상과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지속된 인간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2020년 가을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진주박물관이 지난 2018년 새롭게 역주한 『쇄미록』(전 8권‧사회평론아카데미) 출간을 계기로 기획되었다.
미증유의 전란 속에서 일기를 쓴 오희문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였던 점에서는 평범한 양반이다.
그러나 오희문의 큰아들 오윤겸(吳允謙, 1559~1636)은 우계 성혼의 고제(高弟)로 인조 대 영의정을 지냈으며, 손자인 오달제(吳達濟, 1609~1637)는 병자호란 때 절의를 지키다 청나라에 끌려가 죽은 삼학사 중 한 사람으로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이후 큰아들 오윤겸의 호(號)를 딴 해주 오씨 추탄공파(楸灘公派)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에 잇따라 관계에 진출하면서 서인(소론)의 핵심 가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배경으로 오희문이 남긴 쇄미록에는 전쟁과 관련된 기록은 물론 사노비, 음식, 상업, 의료 등 16세기 말 사회경제사와 생활사 관련 내용이 풍부하다. 임진왜란 당시 쓰인 다양한 기록물과 차별화되며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배계층이었던 양반과 이 시대를 특징짓는 이른바 ‘양반사회’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쇄미록 만큼 도움이 되는 책도 없다.
이처럼 중요한 자료이지만, 기록물 한가지로 특별전을 기획한 시도는 흔치 않았다. 이번 쇄미록 특별전시는 일반적인 고서(古書) 전시를 탈피하여 쇄미록 책 자체와 여기에 실린 다채로운 내용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수치를 활용한 다양한 도표와 디지털 영상물 및 그림 제작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였다.
쇄미록의 주요 장면은 수묵인물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영훈 작가의 21컷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9년 3개월 동안의 전반적인 내용을 그림책을 보듯 일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람이 끝난 후 주요 그림들을 전통제책법인 오침안정법으로 묶어 가져갈 수 있도록 체험 공간도 마련하였다. 관람객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오희문의 인물 관계도를 게임 요소를 곁들인 터치스크린 콘텐츠로 제작하였다.
무엇보다 매일 일기를 쓴 ‘기록하는 오희문’을 묘사한 프로젝션 맵핑 영상과 가시나무를 오브제로 임진왜란의 고통과 고난을 표현한 프로젝션 맵핑 영상. 타임머신을 타고 16세기 말 오희문이 살았던 시대로 날아가 ‘장남의 과거급제‧막내딸의 죽음’ 등 쇄미록의 결정적인 장면을 감상하며 오희문과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인터렉티브 가상현실(VR) 영상 등은 이번 특별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전시품으로는 오희문의 초상, 그의 셋째아들 오윤함의 초상, 오희문과 해주오씨 묘지명 등이 선보인다. 특히 오희문의 초상은 해주오씨 추탄공파 종중에서 권오창 화백에게 의뢰해 새롭게 제작하였다.
쇄미록 1~7책은 한 책씩 살펴보면서 오희문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이외에도 임진왜란 시기 중요한 개인일기로 남아 있는 김용 호종일기(보물 제484호), 조정 임진란 기록 일괄(보물 제1003호), 노인 금계일기(보물 제311호) 등도 커다란 볼거리가 될 것이다.
전시 도록은 특별전이 개최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글에 이어 쇄미록의 서지학적 가치를 다룬 장과 전쟁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9년 3개월 동안의 여정 등 6개 주제로 재구성한 글 등 모두 7장으로 구성하였다.
오희문과 관련된 주요 일지와 생일‧제사‧24절기 등 1년의 주요 행사를 담은 달력, 여정표, 쇄미록 수록 교서나 격문 등의 주요 문서 목록 등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특별전을 준비하며 방대한 쇄미록의 모든 것을 잘 정리한 안내서로 준비하였다.
오희문은 전쟁으로 어렵고 힘든 날을 보내야 했지만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로, 주인으로, 가장으로서 여러 역할을 해내며 16세기를 살았고 그 하루하루를 일기에 담아 오늘에 전했다.
42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시도한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코로나19의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꿈꿔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NEWS & T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하나의 황룡사가 쏟아낸 보물들 (1) | 2020.10.22 |
---|---|
한국농업사의 개척자 김용섭 (0) | 2020.10.21 |
"제발 돈 좀 주세요" 사바틴의 대한제국 러시아공사관 대금 지불요청서 (0) | 2020.10.19 |
한국근대를 건축으로 설계한 사바틴 (1) | 2020.10.19 |
건축 사진의 거장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한국 첫 개인전 (0) | 2020.10.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