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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한국농업사의 개척자 김용섭

by 한량 taeshik.kim 2020. 10. 21.

 

 

 

간밤 이런저런 일로 뒤척이다 늦게 일어난 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카톡을 먼저 연다. 보니 김용섭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있다. 우선 문화부 담당기자한테 연락해서 간단한 소식 쓰게 하고 나중에 종합하게 했다.  

 

한국농업사 대가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
송고시간 2020-10-21 08:26 
임동근 기자

 

 

한국농업사 대가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 | 연합뉴스

한국농업사 대가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 임동근기자, 산업뉴스 (송고시간 2020-10-2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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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엥? 한다. 상당한 연배시고,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은 가끔 있었으니, 언젠가는 들을 소식이었지만, 한국역사학 황금세대의 당당한 주축이요,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大家가 갔다는데 무념무상할 순 없다. 나는 영문과인 까닭에 사학과에 오래도록 봉직한 선생을 이런저런 학적 인연으로 직접 마주할 일은 없었다. 

 

내가 입학하고서 군대 갈 무렵이던가? 사학과에서는 손보기 선생이 퇴직했고, 그때 선생과 하현강 선생 등등이 사학과 주축이었다고 기억한다. 

 

선생은 내 기억에 1931년생이라, 한국역사학 황금시대를 구가한 분들이 대개 이 무렵 태생이라, 개중에서도 선생은 연배가 가장 높았다. 이 황금세대라고 하면 선생과 조동걸, 그리고 강만길 선생 트로이카를 나는 든다. 옛날부터 내가 요상하게 생각했던 게 선생이 1931년생, 조동걸 선생이 32년생, 강만길 선생이 33년생으로 쪼르륵 한 줄을 이룬다는 점이더랬다. 

 

그 밑으로 윤병석 선생이 35년생이요, 이만열 선생은 저 연배에서는 막내급인 38년생이다. 이들 30년대생들이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이다. 

 

저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때론 경쟁하면서 때론 협력했다. 선생은 희한하게도 언뜻 빛이 나기 힘든 농업사를 개척했다. 

 

선생이 같은 세대 다른 선생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선생은 극도로 언론 노출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를 인터뷰한 언론이 거의 없다. 내 기억에 조선일보던가? 한 번 쳐들어가서 인터뷰한 걸 봤을 뿐이다. 나? 시도한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다. 직접 뵌 것도 몇번 되지 않는다. 둘째, 연구자로서의 길만 고집했다. 여타 같은 세대 역사학도들이 시대가 바뀌어 정권이 바뀌어 다 한 자리를 꿰찼을 때도 오로지 연구실만 지켰다. 

 

젤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 양반의 스승에 대한 배려다. 서울대 사범대 사학과 졸업인 선생은 그쪽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70년대 중반 연세대로 옮긴다. 그의 회고록에도 이상하게 비틀어놓기는 했는데, 결국 교수사회 쌈박질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대를 탈출해 연세대로 옮긴 것이다. 

 

1955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그는 이 학과에서 59년 이래 67년까지 교편을 잡고는 조교수가 된다. 그러다가 67년 동 대학 문리대 사학과로 전직한 일이 불씨가 된다. 내가 알기로 콧대높은 문리대 사학과가 사범대 출신인 선생을 그리 용납하지 않았다고 안다. 

 

결국 이 교내 투쟁을 이기지 못한 선생은 1975년, 평생 직장이 된 연세대 인문학부 사학과 교수로 전직한다. 한데 이 전직을 둘러싸고 또 다른 불씨를 연세대 사학과에서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익히 알려졌듯이 이 무렵에는 이미 완연한 구석기 고고학도로 우뚝선 손보기가 선생의 스승이다. 서울대 사범대 사학과 시절 두 사람은 사제 관계 연를 맺었다가 생평 계속한다. 

 

학산 이인영은 손보기 스승이다.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서 손진태와 함께 교편을 잡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나중에 납북되어 소식을 모르던가 그때 타계했다. 그는 서지학의 대가였다. 이런 스승을 손보기가 기리고자 학술대회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 선생이 스승이 마련한 자리라 해서 참석했다. 

 

그 자리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옮겼는데, 당시 이미 상당한 연배였던 노인네 김용섭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손보기 선생께 허리를 굽히면서 "학생들이 한잔 하고 싶답니다. 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당시 그가 이미 퇴직 무렵이었던가 하는 때였는데, 그때도 그랬다. 참말로 끔찍한 양반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스승을 끔찍히 모셨고, 후학들한테는 범접도 못할 엄한 스승이었던 사람이 김용섭이다. 선생이 생전에 특히 아낀 제자로 방기중이 있는데, 듣건대 그를 아낀 이유는 다른 제자는 말도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데, 방기중 선생은 앵겨 붙을 정도로 선생한데 잘 했다고 한다. 

 

그런 법이다. 엄한 사람일수록 때론 농땡이도 치고, 말도 스스럼없이 하는 그런 제자를 아끼는 법이다. 그렇게 아낀 방기중이거만 연세대 사학과 교수 봉직 시절 일찍 죽고 말았다. 그가 아낀 또 다른 제자 김준석 또한 일찍 떠나고 말았으니, 참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은 사람이 고인이다. 

 

한국농업사 대가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종합)
송고시간 2020-10-21 09:15 
임동근 기자

 

 

한국농업사 대가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종합) | 연합뉴스

한국농업사 대가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종합), 임동근기자, 산업뉴스 (송고시간 2020-10-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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