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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수도암 신라비 학술대회에 부치는 김태식 토론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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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 천미터 해발에서 바라본 남쪽 가야산 상왕봉

 

수도암 신라비 학술대회 개최에 토론을 겸한 몇 가지 제안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실감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오늘 학술대회 주제인 신라비가 자리하는 김천 출신이요 더구나 그 소재지인 증산면과는 같이 소백산맥 준령이 지나는 대덕면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수도암 큰집 청암사는 중학교 시절 매년 소풍가는 데였습니다.

 

수도암 신라비. 창주 도선국사 저 아래에 신라시대 금석문이 있다.



수도암은 풍광이 워낙 좋아 매년 두어번 들르고, 혹 제가 김천에 머물 때 외부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이 김천이라 빼지 않고 안내하는 데가 수도암입니다. 

그런 수도암이 어떤 데인지를 공부하는 좋은 자리입니다.

오늘 훌륭하신 여러 선생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를 들으면 과연 제가 수도암의 무엇으로써 수도암을 안내했는지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내친 김에 김천시에서는 김천의 역사문화를 조명하는 이런 자리를 좀 더 자주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드려봅니다.

김천은 그럴 자격이 넘치는 고장인 까닭입니다.

 

신라비 탁본



수도암 혹은 그 신라비 관련 논의를 접하면서 우리가 놓치지 않았나 하는 점 한두 가지를 짚고자 합니다.

첫째 지금의 행정구역에 이끌려 수도암을 이 행정구역에 가두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지금 수도암은 직지사 말사지만 역사적으로 수도암은 해인사 권역입니다.

이는 현지 사정을 조금은 더 안다 할 만한 저 같은 사람들은 직감합니다.

두 권역 사이에는 험준한 산들이 걸쳤지만 놀랍게도 이 산들이 교통로였고 실제 해인사와 수도암 사이에는 이 산길 교통로를 통한 교류가 빈번했습니다. 

수도암 대적광전에서 바라보면 가야산 상왕봉이 빼곡히 보입니다.

본래 자리인지 자신은 없지만 현지 사정 고려할 때 지금의 방향이 본래 방향임은 확실합니다.

비로자나 석상은 가야산을 향하고 있습니다.

 



수도암을 논할 때 가야산과 해인사를 뺄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 같은 맥락에서 수도암 일대가 집중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시대가 조선중후기입니다.

특히 이 일대를 무대로 삼은 도세순의 용사일기 같은 문헌은 앞서 말한 가야산 수도산 일대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왜 봐야 하는지를 웅변합니다. 

산길교통로,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는 문화권 설정을 할 때이며 그 속에서 수도암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봅니다.


구체로 들어가서 이번 학술대회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데가 아무래도 박남수 선생 발표입니다. 기존 판독을 교정하면서 새로운 판독을 추가했는데, 이 새로운 판독에 대한 발표자 본인의 신뢰성을 여쭙고 싶습니다.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저는 믿고 싶습니다. 왜? 내용이 좋으니깐요.  

이번 신라비 공식 보자인 박홍국 선생께는 아무래도 김생 진적이라는 발표가 두고두고 논란이 될 법한데, 이를 위해 삼국사기에 기록된 김생 출생연대까지 교정하신 것은 아무래도 더 많은 논리 보강이 필요할 듯합니다.  

김정원 선생님께는 질문보다는 의견을 여쭙습니다. 안으로 굽은 팔이라서인지 모르지만, 저는 언제나 석조 비로자나불상을 보면서 석굴암에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말을 합니다. 제가 너무 나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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