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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스님은 좋은데, 속인은 싫은 낙엽

by taeshik.kim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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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대 낙엽의 계절엔 "시몽 너는 아느냐" "시몽 너는 좋으냐" 운운하는 무슨 시인지 뭔지가 유행했으니, 저 말 뒤에는 "오빠 믿어봐, 손만 꼭 붙잡고 자마"라는 말이 나왔지만, 글쎄 꼭 그 때문은 아니었을 터이나, 짓밟히는 낙엽이 내는 바스락이는 거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더랬다. 한데 이 낙엽도 낙엽 나름이라, 더구나, 주거 환경이 급속도로 변함에 따라, 그에 따른 급격한 도시환경 변화는 종래와는 사뭇 다른 낙엽 문화를 낳았으니, 낙엽에 미끄러져 초대형으로 발전하는 안전사고 역시 심심찮게 되었다는 것이니, 물론, 이 도시화 혹은 산업화 이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아스팔트는 그나마 표면이 까칠하니 나은 편이지만 보도블록이나, 그에 난 계단은 맨질맨질한 일이 많아, 특히 비가 내리거나 그것이 내린 뒤에는 그에 깔린 낙엽 잘못 밟아 객사하는 일도 있고, 미끄러지면 초대형 안전사고라, 팔다리 부러지고 허리가 나가는 일도 다대하게 되었다. 낙엽도 나름이라, 불도 붙지 않는 은행이파리는  미끌미끌이라, 안전사고 유발하는 조짐이다. 


낙엽은 무성한 나뭇가지를 앙상하게 만드는 첩경이다. 그것이 무성히 땅에 깔린 광경은 사뭇한 풍광을 연출하거니와, 그 이전과 그 직후를 극적으로 대비해 선시禪詩로써 선경禪景을 펼쳐 놓은 시가 있다. 파노라마 동영상 화면 같이 낙엽을 둘러싼 몇 가지 장면이 순식간에 굴러가는가 싶기도 하면서, 오버랩과도 같아 같은 화면에 여려 장면이 뜨는 것도 같다. 



수송동 목은영당


  


한시, 계절의 노래(216)


낙엽[詠落葉]  


[唐] 정곡(鄭谷) / 김영문 選譯評 


돌아오는 개미는

굴 찾기 어렵지만


귀가하는 새는

쉬 둥지 찾네


회랑 가득해도

스님은 싫다 않고


한 조각에도 

속인은 많다 싫어하네


返蟻難尋穴, 歸禽易見窠. 滿廊僧不厭, 一片俗嫌多. 


시는 자연스런 감정의 발로를 중시한다. 하지만 감정에 치우쳐 감탄사를 남발하거나 감상에 젖어 무절제한 어휘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시의 격조가 떨어지고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의하면 북송 초기 시에 뛰어난 아홉 스님(九僧)이 있었는데, 당시에 진사 허동(許洞)이란 사람이 이들을 모아 놓고 “산(山), 수(水), 풍(風), 운(雲), 죽(竹), 석(石), 화(花), 초(草), 설(雪), 상(霜), 성(星), 월(月), 금(禽), 조(鳥) 등의 글자를 쓰지 말고 시를 지으라 하자 이 스님들이 모두 붓을 꺾었다고 한다. 한시가 당나라 때 극성한 후 얼마나 새로운 표현을 얻기 힘들게 되었는지 짐작할 만한 일화다. 흔히 한시를 가리켜 음풍농월(吟風弄月)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롱하는 까닭도 이들 글자에 의해 야기된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표현 때문일 것이다. 구양수를 비롯하여 매요신(梅堯臣), 소순흠(蘇舜欽) 등 북송 초기 시인들이 당나라 시의 낡은 표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나라 후기의 시인들도 앞 시대와 다른 독창적인 시를 쓰기 위해 고심했다. 하긴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신만의 시를 쓰려고 평생을 바치는게 당연하다. 특히 낙엽을 읊은 시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개 비애와 별리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는 놀랍게도 그런 속된 묘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개미가 먹거리를 찾아 떠났다가 돌아오는 짧은 틈에 낙엽이 가득 쌓여 길을 찾기가 어렵다. 가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인생 또한 그렇다. 저녁에 돌아오는 새는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휑한 나뭇가지에서 자신의 둥지를 쉽게 찾는다. 모든 가식을 벗어던지고서야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법이다. 절집 행랑에도 만추의 낙엽이 가득 쌓였다. 흐드러진 낙엽 위를 거니는 늙수구레한 스님은 한 소식 깨달음에 도달한 것일까? 그러나 낙엽을 쓸고 치워야 하는 속인들에겐 떨어진 잎이 귀찮을 뿐이다. 낙(落)·엽(葉)·풍(風)·추(秋)·상(霜) 등의 글자를 하나도 쓰지 않고 격조 높은 낙엽 시를 얻었다.


*** 번역은 원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약간 변형했음을 밝힌다.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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