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덕수궁미술관과 예술의전당에서 모두 한국 근현대 서예를 조망하는 전시를 했었다.
적어도 이 두 전시에 작품이 나온 이들은 한국 근현대 서예의 거목으로 인정받았다고 하겠다(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겠으나).
그 중 평보 서희환(1934-1995)이라는 분이 계신다. 34년생이니 지금 살아있어도 여든여덟이다.
그러나 당당히 그 스승뻘인 이들과 함께 회고의 대상이 되어 두 전시에 모두 나왔다.
2. 서희환은 소전 손재형(1903-1981)에게 배웠다. 국전에 네 번 연속 특선으로 뽑히고 1968년에는 <애국시>로 대통령상을 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에겐 독이었다. 스승의 글씨체를 본뜨다시피 한 <애국시>를 두고 국전 심사의 공정성 문제, 소전의 국전 심사 독주에 대한 비판이 대두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서희환은 자기 글씨를 쓰기 위해 고뇌하고, 몸부림쳤다.
3. 그는 호남 백성들이 일상에서 주고받았던 간찰 글씨를 자기화해냈다. 그 안에서 글씨의 힘과 생명력을 발견하고, 스승 손재형의 글씨를 뛰어넘는 평보 특유의 체를 만들어냈다.
그의 만년 글씨, 특히 흘림글씨를 보면 마구 쓴 듯이 보이지만 힘의 강약을 조절하며 글자의 리듬을 살렸다. 그러면서도 무리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판본체 같은 한글의 각체를 활용해 다양한 조형실험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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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의전당에서는 그를 은둔하며 자기 체를 만든 것처럼 설명을 붙였는데, 여기에는 찬성할 수 없다.
국전에 여러 번 특선한 것은 둘째치고, 그는 70년대 정부가 필요로 하는 기념비문을 여럿 썼고 수도여사대(세종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또 그의 글씨를 "회장님 글씨"라 할 정도로 기업인들이 좋아해 집무실에 많이들 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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