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이렇게 온 세상을 뒤덮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길을 막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숨 쉬듯이 여행 다니던 사람들은 야속한 바이러스를 원망하다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예전 여행 사진들을 보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곤 한다.
아 저때는 저기를 갔었지, 이때 여기 음식이 참 좋았는데 하면서.
800년 전을 살았던 아저씨 이규보도 여행을 다녔던 적이 있다.
물론 공적인 임무를 띈 출장이었지만, 출장 가는 길에 여러 고을 명소를 둘러보았고 그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옛 수도 풍치가 남은 전주, 중국 가는 길이 멀지 않다는 변산, 고구려에서 날아왔다는 전설이 담긴 비래방장飛來方丈,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올라간 원효방元曉房과 불사의방不思議房…
이규보는 그때의 여행을 “남행월일기”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왜 그는 자신의 여행을 기록으로 남겼는가?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일찍이 사방을 두루 다녀 무릇 나의 말발굽이 닿는 곳에 만일 이문異聞이나 이견異見이 있으면, 곧 시詩로써 거두고 문文으로써 채집하여 후일에 볼 것을 만들고자 하였으니, 그 뜻은 무엇인가? 가령 내가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고 허리가 굽어서 거처하는 곳이 방 안에 불과하고, 보는 것이 자리 사이에 불과하게 될 때, 내가 손수 모은 것을 가져다가 옛날 젊었던 시절에 분주히 뛰어다니며 노닐던 자취를 보면, 지난 일이 또렷이 바로 어제 일 같아서 족히 울적한 회포를 풀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3, 기,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이규보는 여행 이후를 생각했다. 교통이 불편하던 그 시절, 여행이란 이런 공무출장이 아니라면 정말 큰마음 먹고 가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좋았어도 다시 가 보기를 기약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지금 사람들처럼, 이규보도 여행 다니기 힘들게 될 때 예전에 다녀온 생각을 하며 견뎠던 것이다.
그때는 사진이 없었으니 붓으로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까만 먹글자를 되짚어 읽어가며 좋았던 그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우리의 백운거사 이규보 –
아! 그에게 스마트폰 하나를 쥐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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