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쓴 바.
우리나라 영조대에는 균역법이 실시되어
일반 백성들은 두 필씩이던 군포를 한 필씩으로 줄이고
그 차액만큼 다른 데서 수입을 보충하고자 한 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차출되어 나오는 이들이 향촌 중인,
자신은 양반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양반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서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들로,
이들이 동네마다 차출되어 수포군관이 되어
졸지에 군포 한 필씩을 내야 하게 되었다.
(교과서적으로는 선무군관이지만, 수포군관이라는 이름도 당시 혼용했으므로 그냥 수포군관으로 쓰겠다)
이들은 원래 양반이라 하여 안 내던 군포를 한필이라도 내게 되었으니
그 불만이 하늘을 찔렀는데,
그래서 달래기 용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들에게
수포"군관"이라는 이름을 준 것이다.
그런데 수포 군관이건 뭐건 간에 이들의 양에 차지 않았던 것은,
이름은 뭐라고 붙이건 간에 군포 한 필을 낸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양반이 아니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균역법 이후는 평민도 군포 한 필이니 평민으로 내려갔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달래고자 "수포군관"이라 했지만,
자기들이 양반이라고 생각하던 서자들이 "수포군관"이라는 이름에 만족하겠는가?
그래서 달래기 용으로 나온 또 한 가지가
수포군관만 따로 모아 취재-말하자면 무과-를 따로 보겠다는 것이 되겠다.
군관은 군관이라도 무과를 급제한 이른바 "출신군관"은 "수포군관"들과는 신분 면에서 차이가 있었고
출신을 해야 선전관이라도 받아 양반 직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으므로,
분명히 이 자체로만 보면 매력적 제안이 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뭐인지 모르겠지만,
출신군관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출신군관으로 될 길을 열어주겠다는 건데
그건 이미 조선후기 많으면 천명씩 뽑는 무과 응시해서 붙어버리면 그만이니
도저히 메리트가 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하겠다.
사은품으로 상품권을 주겠다고 해도 할까 말까인데
상품권을 받을 수 있는 추첨에 응모권을 주겠다는 것인데 그걸 누가 하겠는가.
왜 수포군관들에게 취재를 해서 채용하겠다는 제안을 정부에서 대안이라고 내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서 좀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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