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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시장이라고 있어 봐야 상품이 많지 않았을 임란 직전 조선사회

by 日莫途遠 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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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채도 없었다! 조선시대 선물목록 1순위는 놀랍게도 부채였다.

 
우리나라 일기의 걸작 삼대작이라고 하면, 더 나올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쇄미록, 묵재일기, 미암일기라 하겠다. 

이 세 일기는 신변사의 디테일, 그리고 그 분량의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 

셋 모두 임란 직전, 혹은 임란 와중의 사건의 기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세 일기를 유심히 보면, 사족들이 주고 받는 선물 목록이라는 게 매우 한정되어 있어

필자의 느낌으로는 많아 봐야 스무 가지를 넘지 않는 것 같고, 

그 중에 자주 오가는 것을 추리면 열 가지도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느 한 일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 일기 모두 비슷한 선물을 주고 받으니, 

이는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 선물로 주고 받는 목록에는 양해하는 바가 있었다는 의미와도 같겠다. 

쉽게 말해서 자주 주고받지 않는 것을 선물로 주면 도대체 가치를 짐작할 수 없으니, 

희귀한 것을 주고 받는 요즘 선물과는 완전히 그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하겠다. 

쉽게 말해 당시의 선물 목록이란, 

사실상의 화폐의 역할을 하여 사회적으로 그 가격이 어느 정도 상호 양해된

생필품이 주류였던 바, 

앞에서 보듯이 이런 물품들은 우리가 보기엔 잡동사니로 보이지만, 

어엿히 상품화폐로서 심지어는 논을 살 때도 가격을 쳐서 주고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짐작해 볼 것은, 

이 시기에 시장, 소위 말하는 장시.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하나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묵재일기에도 나오듯이 시장에 물건 팔러 나가는 기사도 가물에 콩나듯 하기는 한데, 

그 시장은 요즘 우리가 아는 시장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쉽게 말해 온갖 물품이 넘쳐나고 볼거리가 풍만한 시장이 아니라, 

가 봐야 들고나온, 거래되는 물건이 종류가 많지 않은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당시 사족들이 주고 받는 물품 가짓수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다. 

이런 양상은 영-정조대인 18세기 후반 들어서야 

비로소 시장에 물품 가짓수가 증가하여 시장 비슷한 모양을 제대로 갖춘다고 보는 바, 

그 양상은 예전 성균관대 안대회 선생 등이 소개한 성시전도시에 생생히 나타난다 하겠다. 

다만 이것도 수도인 한성과 같은 도회 이야기라, 

지방 장시의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 하겠다. 
 
*** [편집자주] ***
 
계속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장은 조선시대 내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등장하는 시점은 편집자가 보건대 경복궁 중건 이후다. 곧  19세기 후반이 되어야 한다. 

경복궁 중전은 내가 보건대 진짜로 한국사회를 자본주의 맹아를 틔운 거점이라 하겠다. 

당백전 이야기는 허심히 넘겨서는 안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한국사회는 돈 맛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조선시대를 배경 삼은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걸핏하면 시장에 나가 구경하고 물품 구입하며, 또 걸핏하면 룸싸롱 가서 기생 끼고 술판 벌이는 장면은 유감스럽게도 오리엔트 환상특급이며,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풍광이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는 조선시대에 무슨 민간 룸싸롱이란 말인가? 얼토당토 않고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조선사회는 이랬을 것이라는 욕망이 빚어낸 환영이다. 
 
묵재일기...논을 사고 지급한 물품들
 

묵재일기...논을 사고 지급한 물품들

묵재일기에 보면 논을 사러 보내는 장면이 있다. 이때 논을 산 대가로 뭘 지불하는가 하면, 목면 1동호피 큰 것과 작은 것 2장, 백지 (권수 누락)상지 10권빗 140개향합과 사향로 각 1개벼루갑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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