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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불교에 대한 의문, 집안마다 따로 있는 사찰

by 日莫途遠 2026.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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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불교에 대한 필자의 인식은 높지 않으니 

그걸 감안하고 봐주기 바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어느 집안 영당을 한 절에 위탁하였는데, 

이 절은 이 집안 조상들 영당을 차려 놓고 명복을 빌어주는 대신에, 

여러 가지 잔신부름도 하고, 

양반은 그 절과 사실상 경제공동체와 같은 모습을 보인단 말이다. 

이 시점은 16세기 이미 척불론은 물론이고, 

주자가례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던 시점이었는데도 이렇다. 

그리고 절에서 이것저것 그 양반들한테 바치러 내려 오면

보답삼아 양반은 스님들한테 밥도 먹이고 

술 한 상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의 절이 과연, 조선시대 들어와서 

척불론 때문에 불교가 타락하여 벌어진 현상이었을까, 

그게 아니라 고려시대, 신라시대까지도 올라가면 비슷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현재의 불교를 보면, 

이 불교가 과연 일제시대의 "대처승"의 일본불교전통을 꺠고, 

다시 원상복귀한 모습이 맞을까 항상 의문스러웠다. 

이건 전통 불교로 다시 돌아간 모습이 아니라, 

한국 불교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개혁과 같은 사건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나, 특히 종교가들은 혁신의 근고로 "과거로, 오염되지 않은 처움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을 내세우는바, 

그런 과거가 과연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루터와 칼뱅이 이야기하던 성서에 의거한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형식상으로는 원초적 진리로 회귀하자는 것이겠지만, 

유사 이래 루터 칼뱅 이전에는 기독교가 그런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한국 불교의 현재 모습은 과연, 한국 전통불교의 모습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현재의 한국불교는 루터, 캘빈처럼 종교개혁의 성과물이 아닌까? 

 

*** [편집자주] ***

 

필자가 말하는 불교는 흔히 척불론 시대 불교의 새로운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봤으나, 그것이 불교가 살아가는 한 방식이었다.

왕실에만 원찰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노라하는 집안마다 원찰이 다 따로 있었으니, 이것이 실은 개인 문중사찰이다.

이것이 국가단위로 가면 원찰이 되어 왕릉과 산성을 주로 방비하는 모습으로 발현한다.

능참봉?

게을러 빠져서 실은 암것도 하지 않는다. 실제 잡무는 다 사찰에서 했다.

조선시대 사찰을 보면, 그렇게 두부를 해다 나른다. 집에서 잔치할 일이 생기면, 드라마에서 보듯이 온동네 아줌마들 불러다 놓고 음식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인근 원찰에다 시켜서 음식을 장만해 온다.

종이 생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사하촌이라는 것이 그런 공동체다. 

조선 경제를 받침한 일대 축이 바로 불교요 사찰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지금의 본사에 해당하는 주요 사찰은 조선시대의 경우 왕실 혹은 국가가 먹었고, 기타 작은 사찰이나 암자가 개인 원찰이었다. 

불교의 다른 생존 전략 중에 고시원이 있다.

조선이 왜 불교를 버리지 못했는가?

안방마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수요처가 바로 고시원이었다.

심지어 사가독서도 사찰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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