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30)
술을 마주하고 다섯 수(對酒五首) 중 둘째
[唐]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 다투나
부싯돌 불꽃 속에
이 몸이 붙어 있네
부유하든 가난하든
즐겁게 살아야지
입 열고 웃지 않으면
그 사람이 바보일세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癡人.
온 땅이 얼어붙은 연말이다. 이제 2018년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세월이 쏜살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나는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60에 접어든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나이다. 어린 시절 환갑잔치를 하는 어른들을 보면 모두 머리는 성성하고 손자 손녀가 줄줄이 딸린 상노인이었다. 당시에는 내게도 60이란 나이가 박두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른 무렵부터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더니 마흔 줄에는 정신없이 살다가 금방 쉰을 맞았고, 그 이후부터는 오늘은 설날, 내일은 섣달그믐인 것 같은 광음의 질주가 계속 됐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제법 절실하게 다가온다. 실로 인생은 달팽이 뿔 위의 다툼이요, 부싯돌 불꽃 속 스침이다. 부싯돌을 보신 적이 있는가? 어릴 적 우리 고향 영양 산골에는 어르신들이 담배를 피울 때 아직 부싯돌을 사용했다. 아무 돌이나 부딪혀 불꽃을 내는 것이 아니고 부싯돌로 쓰는 돌이 따로 있었다.
부싯돌 밑돌과 잘 말린 쑥을 함께 잡고 또 다른 돌로 밑돌을 부딪혀 불꽃을 내면 거짓말처럼 순간적으로 마른 쑥에 불이 붙는다. 단 번에 붙는 경우는 드물고, 몇 번을 반복해야 한다.
달팽이
우리 인생이 바로 실체 없는(無常) 부싯돌 불꽃이라는 비유는 매우 적확하다. 무상(無常)이 어찌 인생뿐이겠는가? 삼라만상이 모두 무상하다. 『금강경(金剛經)』의 논리를 빌리자면 무상은 무상이 아니므로 진정으로 무상하다. 하지만 부처님 정도 돼야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면 이미 그는 부처님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이들에게 어찌 웃으면서 즐겁게 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불교는 참으로 가혹한 종교라고 해야 한다. 그걸 인연이니 업장이니 하는 말로 분식하니 말이다.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참으로 혹독한 계절이다.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죽 터뜨리며 맞는 새해 첫날 (0) | 2019.01.02 |
---|---|
한 조각 붉은 마음으로 불태우는 밤추위 (0) | 2019.01.01 |
촛불 아래서 내뱉는 장탄식 (0) | 2018.12.29 |
시절 아님에도 서둘러 찾아간 꽃 소식 (4) | 2018.12.24 |
복어회에 소주 한잔으로 보내는 세모 (0) | 2018.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