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글에서 식민지시대 조선과 일본을 결정해 버린 것은 대학령이라 했다.
물론 조선의 교육 문제는 대학수만 적다는 데 있지 않다.
전문학교와 고등학교수도 문제였고 특히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의 대학예과 역할을 하던 시대에 대학이 없으니 고등학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수가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는 일본의 기업들이 고도화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도 서구제국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못 미치던 일본 기업들이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해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학력에 따라 승진의 한계가 정해지는 일종의 "기업골품제"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1905년부터 1930년까지 전문경영자 중에 고등교육기관 출신자 비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가?
이러한 학력의 문제는 전문경영자에게만 국한하지 않았다.
1930년대가 되면 일본의 화이트칼라와 기술직은 직급과 학력 관계가 매우 강고하게 되었다.
전문학교 이상은 나와야 화이트칼라면 주임이라도 하게 되며, 기술직이라면 기수 이상은 최소한 실업학교는 졸업해야 했다. (조선의 선린상업이나 목포상업 등)
위 표는 1930년대 것이니 1940년대가 되면 전반적인 일본사회 학력 수준이 더 올라가 보통학교 졸업하기도 빠듯한 조선인들로서는 갈 곳이 직공 밖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일제시대에 대학령 하나만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일본인과 조선인 학력차가 발생하며,
이 학력차는 결국 직장에서의 직위, 그리고 급여, 생활 수준까지 결정하게 되는 것으로,
따라서 대학령을 포함한 교육제도가 일제시대 조선인의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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